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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5 죽지 못해 사는 어머니

 어머니는 나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직장을 다니며 자식 셋을 키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당시 보건소의 공무원이었다. 산아제한 정책을 실천하고 있었다. 자식 셋을 키우는 것은 둘만 낳자는 포스터를 붙이는 것이 주된 일과였던 어머니에게 어색한 일이었다. 보건소 직원의 눈총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같은 말단 공무원인 나의 아버지에게 생계를 맡기고 당신은 서른셋부터 전업주부의 삶을 살았다.     


 어머니는 악착같이 모았다. 쥐꼬리에 비유되던 말단 공무원의 월급을 자르고 잘라 저금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엄마의 통장을 찾는 능력이 있었다. 장롱 속에서, 장판 아래에서, 어머니의 비밀 장소에서 기가 막히게 통장을 찾아냈다. 어머니는 악착같이 모았고 아버지는 악착같이 모아놓은 돈을 찾았다. 통장이 세상에 드러날 때마다 어머니는 울었다. 바닥에 앉아 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어머니가 나물 값과 전기세와 옷값을 아껴 한 푼 두 푼 모은 돈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친구에게, 친척에게, 때로는 호기로운 술값으로 쥐새끼처럼 사라졌다.     


 읍 단위의 시골에 도시로 이주하는 붐이 일었다. 자녀의 미래를 위해 하루빨리 동참해야 하는 일이었다. 옆집도 뒷집도 다들 집을 정리하고 도시로 이주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청약을 넣어 도시의 아파트에 운 좋게 당첨되었다. 도시의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서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았다. 청약 잔금과 생활비를 치르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쥐꼬리를 자르고 잘라 치를 것을 치르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슈퍼에 외상을 졌다. 친척과 이웃에게 한 푼 두 푼 생활비를 빚졌다. 온 동네에 빚 갚을 사람뿐이었다. 가끔씩 트럭에 한가득 물건을 싣고 찾아오는 장사꾼의 확성기 소리가 어머니는 그렇게 듣기 싫었다고 한다. 동네 아낙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것저것 흥정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그곳에 낄 수 없었다. 흥정을 해도 살 돈이 없었다. 그곳에는 어머니가 빚진 사람들이 즐겁게 모여 있었다. 갚을 돈도 없었다. 어머니를 부르는 확성기 소리는 뒤집어쓴 이불을 뚫고 어머니의 귓가에 울렸다.     


 어머니는 일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돈을 벌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여자가 밖으로 나가면 바람을 피울 수도 있고 남편을 이겨먹으려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머니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몸이 나가면 돈도 나갔다. 어머니는 누워만 있었다. 그것은 돈이 들지 않았다. 집 안에 누워만 있는 생활이 길어지면 가끔씩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고 한다. 한참 동안 옥상 너머의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바라만 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학교를 마친 자녀들의 밥을 차려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늘 누워있었다. 이불을 덮고 하염없이 천장을 보고 있었다. 끙끙 앓는 소리로 다녀왔냐고 말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누워있는 줄 알았다. 그것이 우울증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이모부의 권유로 병원에 다녔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정신병원에 다닌다는 것이 부끄러웠을 뿐 아니라 병원비와 약값은 비쌌기 때문이다. 몇 번의 진료 후 다시 누워있기로 했다. 


 그것은 역시 돈이 들지 않았다. 어머니는 손톱이 반만 있었다. 누워서 할 일은 손톱을 물어뜯는 일뿐이었다. 내 어린 시절의 어머니는 돈도 벌지 못하고 바람도 피우지 못하고 남편을 이겨먹지도 못하고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누워서 손톱을 물어뜯다가 밥을 차리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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