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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6 습성이 되어버린 주눅

 나의 아버지는 위압과 폭력말고는 자식들에게 보여준 것이 없다. 그의 인격적인 미성숙과 능력의 부족은 자녀들의 수많은 요구를 결핍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음에도 그는 아버지로서의 존경과 권위를 얻고자 했다.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법도 몰랐던 그는 대신 큰 목소리와 뻔뻔함을 갖고 있었다. 주로 적을 무찌르거나 군인의 기강을 잡는 데 사용할 법한 월남전 참전용사의 전략은 가족들의 요구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데 사용되었다. 그 결과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가 기분이 상하거나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흔들린다고 생각이 들 때면 적으로 간주되어 무분별한 공격을 받아야 했다. 아버지가 불러 세우고 고함을 지른다. 때로는 욕설과 폭력이 가해진다. 그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감내해야 한다. 그것은 복종의 증거이다. 정확한 복종이 이루어졌다고 생각이 들 때 아버지는 공격을 멈추었다. 이러한 ‘복종쇼’는 일주일에 몇 번씩 상대를 달리해가며 우리 집에서 반복되었다.     


 나의 욕구를 함부로 발설하는 일은 죄악이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쓸 데 없는 말을 한다거나 이기적이다, 눈치 없다, 싸가지 없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어린이날에 놀이공원에 가자고 조르다가 발로 차였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다가 뺨을 맞았다. 산타가 없다는 사실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나의 부모가 알려주었다. 크리스마스의 밤이 되어서야 선물은 결국 없다는 사실을 알고 울고 있을 때 욕설을 들었다. 그것은 경제적 궁핍함 속에서 자녀의 요구를 관리하는 어리석지만 손쉬운 전략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언제나 주눅 들어있는 아이가 되었다. 나의 요구는 십중팔구 누군가를 화나게 한다는 법칙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길어지는 대화의 끝은 대부분 파국으로 치달았다. 집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의 요구를 말해야 했다. 그러나 이기적이거나 싸가지없이 보일 수 있고 때로는 얻어맞을 수도 있는 시행착오를 겪는 대신 입을 다물기로 했다.     


 나는 어딜 가나 손쉬운 상대가 되었다. 쉽게 겁에 질렸고 별다른 것을 요구하는 일도 없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섭리처럼 받아들였다. 목소리 큰 친구가 고함이라도 지르면 알아서 고분고분해졌다. 잘 놀라고 금세 조용해졌다. 울먹이며 사정하는 일이 있더라도 화를 내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고개 숙이고 다니고 눈에 띄지 않으려 했다. 복종으로 가는 길이 잘 닦인 아이였다. 집에서 배운 많은 덕목 중 가장 확실한 것은 복종이었다. 아버지가 말하길 그것은 분명 착하고 바람직한 행동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말하기가 어렵다. 식당에서 주문을 하는 간단한 일을 할 때에도 불안감이 언뜻 서린다. 대화의 결말이 대부분 위압으로 향했던 유년기의 나는 아직 내 안에 남아 아주 단순한 말하기에도 겁을 먹고 때로는 울고 있다. 주눅은 어느덧 나의 습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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