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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7 큰누나

 누나가 둘 있다. 나는 늦둥이 막내아들이었다. 나의 출생과 동시에 누나 둘은 2등 자식이 되어야 했다. 그들은 아들을 낳기 위한 시행착오로서의 자식이었다. 부모도 그것을 공공연히 하는 데 별로 개의치 않아했다.   

  

 큰누나는 많은 재능을 갖고 있었다. 졸업식과 입학식 때 단상 위에 올라 대표학생 선서를 하는 것은 언제나 누나의 일이었다. 전교생 중 가장 우수한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받은 상장과 트로피는 이사를 할 때 버리고 오지 않으면 곤란할 정도였다. 연말이 되면 큰누나에게 온 편지와 카드들로 우편함이 가득 찼다. 방에는 친구들이 접어 준 종이학을 예쁘게 담아 놓은 유리병이 가득했다. 큰누나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잘 닦인 길로 큰누나가 나아가기를 바랐다. 피아니스트, 수학자, 기자, 의사와 같은 장래희망은 다양한 재능만큼이나 시시때때로 변했다. 아무리 거창한 직업이라도 큰누나에게는 언제나 열려있는 것처럼 보였고 심지어 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시로 이사를 오고 나서 중학교에 입학한 큰누나는 입학식에서 학생 대표로 선서를 했다. 입학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후 엄마는 조용히 집을 나섰다. 1등으로 입학을 한 학부모는 학교 선생님들의 회식자리를 마련하는 관행이 있다는 사실을 엄마는 들어 알고 있었다. 딸의 1등을 마냥 기뻐하기 어려웠다. 한 달 생활비가 고스란히 날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고민 끝에 입학식에서 장학금으로 받은 십만 원의 봉투를 들고 담임선생님의 집을 찾아갔다. 봉투를 내밀고 사정을 말했다. 담임선생님은 별 말없이 봉투를 받았고 결국 학교 선생님들의 회식은 이뤄지지 않았다. 엄마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입학식이 끝나고 자녀들을 집에 둔 채 집을 나설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할 때, 만남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무슨 마음이었을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언제나 드러누워 끙끙 앓던 엄마가 한 일이었다. 그 뒤로 큰누나는 풀 수 있는 문제를 일부러 틀려 오곤 했다.          


 그럼에도 큰누나는 가진 재능이 뛰어났으므로 화려한 학창생활을 보냈다. 예민하고 섬세하며 조금은 내성적인, 아빠에게는 마음의 문을 닫고 작은 누나와는 말을 하지 않는, 똑똑하고 기민하며 다양한 재능을 짙게 갖고 있는 이 사춘기 여학생이 우리 가족의 일원이었다. 비록 뒤틀리고 가난한 가족이었지만 부모도 나도 큰누나와 같은 가족이라는 사실을 자랑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 피아니스트와 언론인을 꿈꾸던 재능 많은 그 학생은 장애 3급 판정을 받고 장애인 수당을 받으며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한 때 쳐다보지도 않던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며 산다. 나에게 큰누나가 있고 큰누나가 어떻게 지내는지 내 주변에 아는 사람은 없다. 내가 최대한 은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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