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완 Oct 24. 2020

#8 작은누나

 작은누나는 큰누나에게 미치지 못했다. 공부도, 재능도, 외모도, 큰누나에 비해 이목을 끌 만한 무엇도 없었다. 언제나 2등 딸이었다. 게다가 남자도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고 난 다음에는 3등 자식이 되었다. 여러 이유와 함께 작은누나는 어려서부터 가족으로부터 기대하지도, 기대지도 않았다. 작은누나는 아빠와 말을 하지 않았다. 큰누나와도 말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나와도 말을 하지 않았다. 부모의 인정이나 사랑, 칭찬을 바라지도 않았다. 독하게, 이기적으로, 야무지게 커 갔다. 결과적으로, 작은누나는 우리 가족의 세 자녀 중 가장 사람답게 산다.     


 작은누나는 현실적이었다. 헛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착한 행동 뒤에 칭찬이나 대가가 있지 않을까 얌전히 기다리던 큰누나와 나와는 달랐다. 작은누나는 자신의 행동에 부모의 반응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자물쇠를 채워 둔 방 안에서 방바닥에 대변을 놓고 오지 않는 부모를 기다리며 목놓아 울었던 그때부터이지 않을까. 부모가 아무리 화를 내고 핀잔을 주어도 그것은 작은누나에게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똑바로 눈을 치켜뜨고 대들었다. 정확하게 성질을 부렸다. 부모의 배려나 형제의 양보를 기대하지 않고 자기 몫을 쟁취했다. 작은누나의 단단함은 때로는 다섯 살 아래인 나에게는 잔인함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성향은 작은누나가 별 이유 없이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했을 때도, 몸을 팔아서 네가 알아서 먹고살으라는 아버지의 폭언에도, 집이 망하거나 큰누나가 조현병에 걸려 저주의 말을 퍼부으며 칼을 들이밀어도, 그 수많은 엉망진창을 겪었음에도 가장 사람답게 살게 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내가 군인이었을 때, 휴가를 나와 집에서 빈둥거릴 때의 일이다. 작은누나는 남자 친구와 통화 중이었다. 내가 보고 있던 티브이의 볼륨을 낮추라고 거칠게 말하며 경멸의 눈빛을 쏘았다. 그러고는 세상 상냥한 말투로 통화를 이어갔다. 나는 볼륨을 낮추었으나 그것이 작은 누나의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본인이 건넬 수 있는 최대한의 모멸감을 담아 내게 티브이 볼륨을 낮추라고 말했다. 티브이의 소리는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를 정도였으나 작은누나는 그 소리가 명백히 통화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다시..     


 나는 무척 화가 났다. 지난 십수년간 누나가 내게 퍼부었던 잔인함이 떠올랐다. 이제 다 큰 나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듬어진 군인의 폭력성도 더해졌다. 작은누나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우리 집 남자들의 일이라는 듯이 나는 누나를 때렸다. 뺨을 때리고 머리를 때렸다. 주먹을 쥐었는지 손을 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모든 욕설을 퍼부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아버지에게 목울대를 잡혀있었고 작은누나는 집을 뛰쳐나가 어느 건물의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엄마가 올 때까지 울고 있었다.     


 작은누나와 개인적인 연락을 하지 않은 지 10년이 되어간다. 아주 가끔씩 명절이거나 해서 집에 갈 때 몇 년에 한 번 마주칠 뿐이다. 어색한 그 시간 동안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나에 대한 적의로 가득 차 있음을 작은누나는 애써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적의의 대부분은 우리 가족이라는 비극을 공유하는데서 비롯된 것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적의를 품고 있다. 그러나 나의 적의는 한 꺼풀 벗겨내면 슬픔과 회한과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다. 어쨌든, 작은누나는 세 자녀들 중 가장 외면받았음에도 자기 삶을 용감하게 누리고 있다. 다행이다.

작가의 이전글 #7 큰누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