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완 Oct 24. 2020

#9 비염과 아토피

 나는 심한 비염과 아토피가 있었다. 이 질병 아닌 질병은 꽤 짙은 증상으로 다가와 나의 유년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젖먹이 시절부터 나는 온 몸을 긁었다고 한다. 붉게 부은 피부 위에 진물이 흘렀다고 한다. 잠을 자지 못하고 칭얼대며 온 몸을 비틀며 긁어대는 밤이 많았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다리가 접히는 부분, 팔, 목, 귀와 얼굴이 접하는 부분, 입술의 양 옆, 사타구니까지 피와 진물이 뒤엉켜 끈적였다. 가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한바탕 시원하게 긁고 나면 더한 고통이 찾아왔다. 손톱에 박힌 피와 진물 덩어리만큼 찢어지고 파헤쳐진 피부는 비명을 질렀다.      


 병원에 가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늘상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발랐다. 그것은 스테로이드 성분의 약이었다. 연고를 발라 놓은 환부에 가려움이 찾아와 다시 긁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손톱에 하얀 연고와 피와 진물이 범벅이 되어 분홍색 꽃이 피었다. 깨어있을 때보다 자고있을 때가 더 문제였다. 의식 없이 긁어버리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면 손목이 뻐근할 때가 많았다. 상처가 더 늘어나 있었다. 손을 묶고 잠에 들어도 이내 깨어나 풀어버리고 다시 긁었다. 아침이 되면 새로 생긴 쓰라린 부위를 느끼며 눈을 부볐다. 한참을 부볐다. 눈마저 가려웠다.      


 긁어 댄 흔적은 때로는 시체의 피부처럼 갈색으로 변했다. 심한 곳은 코끼리 가죽처럼 회색으로 변해갔다. 특히 입술 양 끝이 심했다. 그곳은 회색으로 변했고 가끔 피가 흘렀다. 입을 크게 벌리거나 매운 음식이 묻으면 참기 어려운 고통이 온 몸 구석구석 퍼져나갔다.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또래 친구들의 놀림이었다. 갈색으로 변해 갈라지고 피가나는 나의 입술을 똥구멍이라고 놀렸다. 놀리는 친구들은 나의 입술과 그것이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고 했다.     


 비염은 아토피보다는 참을 만 했다. 나는 식물보다 정확히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재채기가 하루 종일 나온다는 것은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였다. 재채기를 열 번 쯤 연달아 하고나면 머리가 울렸다. 두통이 찾아오고 하염없이 콧물이 흘렀다. 코가 완전히 막혀 입으로 숨을 쉬어야 했다. 코를 훔친 휴지가 쌓여갈수록 휴지가 헐어버린 콧가는 붉게 변해갔다. 두통과 재채기, 콧물과 코막힘은 계절마다 나를 찾아와 내가 감당해야 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똑똑히 알려주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나는 가장 허약했다. 아토피와 비염의 증상도 가장 심했다. 수능 모의고사를 보는 어느 늦여름이었다. 피와 진물에 젖어있는 환부 위로 땀이 흘렀다. 책상의 철로 된 다리에 내 다리를 붙였다. 차가운 것에 환부를 대면 가려움이 조금은 가셨기 때문이다. 책상다리에 진물과 피가 묻어 나왔다. 그리고 재채기가 계속되었다. 재채기를 할 때마다 두통으로 가득했던 머리가 띵 울렸다. 콧물이 흐르고 코가 막혔다. 숨을 쉬는 일도 짜증이 났다. 그리고 가려웠다. 환부는 쓰렸다. 그 위로 땀이 고였다. 그리고 내 앞에 놓여있는 수능 모의 문제들과 세 달 앞으로 다가오는 수능. 이 모든 것을 감내하는 동시에 내 삶과 내 미래도 꾸려야 하는 막막함.          


 나는 울면서 내 몸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다.

작가의 이전글 #8 작은누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