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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2 우울의 고백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삶의 질량을 잃어버렸다.      


 내 삶은 내가 예감했던 구렁텅이로 서서히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분명 예감했으나 그것을 못본 채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혹은 어떻게든, 마법 같은 일이 펼쳐져 내가 소망했던 어떤 상황으로 거짓말처럼 바뀔 것이라고 조금, 그러나 꽤 확실히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을 것이 명백해졌다. 대부분이 유예와 회피, 기만으로 이루어진 보잘것없는 삶이 힘없는 머리칼처럼 축 늘어져 배수구 같은 미래에 처박히고 있었다.     


 희망의 뒤통수는 기만이었다. '언젠가 괜찮아지겠지'라는 희망이 결국 기만으로 밝혀지는 과정은 내 삶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역사였다. 이대로 살다가 내가 나를 짊어지지 못하고 무너질 것 같았다. 희망의 손에 이끌려 기만이 끌고 가는 배수구에 머리부터 처박힐 것이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가진 것은 지옥에서 내가 꺾은 잡초들 뿐이었다. 마지막 지옥에서 나는 어떤 풀을 뽑아야 하나.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무엇을 보아야 하나. 어디로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며 무엇으로 나의 시간을 채워야 하나.      


 결국 답을 찾아내야 하는 것은 나다. 그러나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생의 어느 순간 해결해 내었어야 할 과제는 복리로 불어 나를 압류했다. 정말. 출구가 없다.     


 진공의 상태. 괜찮을 수도 있다는 착각. 유예. 휴업. 회피. 무시. 되돌릴 수도 없었다. 지독하다. 신이 내팽개친 운명이지만 괴로움만은 정확하게 선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죽음이 나를 보듬을 때까지 쉬지 않아야 하는 날갯짓을 닮은 나의 생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지독한 무의미의 마지막에 나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대체 무엇이 있기에 이런 치욕과 모멸, 우울과 슬픔과 무기력을 나는 겪어내야 하는 것인가.      


 내게 무엇이라도 다오. 나를 압도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내 우울과 자기혐오, 자기기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내게 다오. 무엇이든 좋다. 내 생을 갈아 넣어 버릴 그 무엇인가를 내게 다오. 지나친 요구인가. 헛된 기대인가. 삶은 왜 내게 쥐어주지 않는가. 왜 내게 나의 우울만을 바라보게 하는가. 고치기에 이미 틀려버린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내게 다오. 이 진공을 벗어날 수 있는 무엇을.      


절망과 단념만을 생각하므로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쓸 수 있는 것은 절망과 단념뿐이다. 내 삶과 가장 비슷한 자세로 꾸역꾸역 적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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