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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11 레고

 어린아이가 가난을 뚜렷하게 인식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가난은 어린 아이에게 뚜렷하게 영향을 준다. 나는 유년을 떠올리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부럽다. 물론 내게도 행복한 기억은 드문드문 있다. 그것은 짙은 가난의 배경 위에 서투르게 덧칠되어 있다. 

    

 나는 레고를 무척 좋아했다. 레고를 처음 본 것은 사촌동생의 집에서였다. 조각들은 서로 꼭 들어맞았다. 구조물은 열리기도 하고 구부러지기도 하며 여러 모습으로 변했다. 사람 모양의 피규어는 자동차 위에, 지붕 위에, 용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우주며 바다, 외국의 도시와 같은 환상의 세계들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것이 갖고 싶었다. 레고를 어떻게 갖게 되었냐고 물었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나 어린이날, 혹은 그냥 받게 된 선물이라고 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지 않고도 단지 특별한 날이라고 해서 레고를 가질 수 있다니.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특별한 날을 기다렸다. 레고가 갖고 싶다고 부모님께 언제나 말했다. 기다리던 특별한 날이 되어도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몰래 울었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보채거나 우는 일은 버릇없는 아이가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혼이 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마트에 갈 때면 부모님이 장을 보는 동안 나는 장난감 코너에서 기다렸다. 상자에 찍힌 레고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한 시간쯤은 금방 보낼 수 있었다. 가끔 부모님과 함께 와 레고 상자를 집어가는 또래 아이를 보는 일을 빼면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말했다. 레고를 사주겠다고. 무척 기뻤다. 나도 레고를 가질 수 있었다. 집만큼 익숙한 장난감 코너에 가 내가 그토록 원하던 그것을 골랐다. 부모님은 어려워했다. 너무 비싸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어려도 그 정도쯤은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작은 상자를 다시 골랐다. 다시 더 작은 상자를 골랐다. 부모님은 다시 어려워했다. 나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서 고민했다. 그리고 고른 것은 좀처럼 눈길이 가지 않는, 그리고 재미없어 보이는, 조그마한 레고 상자였다. 그래도 이것은 가난이 아니었다. 단지 생활비가 빠듯했고 선물을 살 여력이 없었을 뿐이었다.     


 생애 첫 레고는 허무할 만큼 금방 조립이 끝났다. 그 집 모양의 레고는 단조로웠고 사람 피규어는 한 개뿐이었다. 그래도 나의 레고를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사람을 지붕 위에, 집 안에 놓고 놀았다. 그러나 금세 질리고 말았다. 친구나 사촌동생 집에 갈 때면 언제나 레고를 가지고 놀았다. 그곳에서의 레고 놀이는 더욱 재미있었다. 자동차 정비공을 용 위에, 공주를 우주선에, 말 탄 기사를 바다에 올려놓고 놀았다. 레고를 정리하며 피규어를 몰래 챙겨 나왔다. 그것은 돈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가난이었다.     


 직장을 잡고 돈을 벌게 된 해 크리스마스, 나는 그 해에 가장 이슈가 되었던 레고를 샀다. 나의 자취방에 펼쳐놓고 며칠이 걸려 레고를 조립했다. 완성된 레고는 여러 모습으로 구부러졌고 열렸다. 차도 있고 개도 있고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만져보고 방 여기저기에 옮겨도 보고 피규어를 지붕 위에 올려도 보았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피규어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배치한 뒤 사진을 찍어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에 올렸다. 그러나 나의 레고보다 눈에 띈 것은 싸구려 자취방의 초라한 장판과 벽지였다. 몇 시간 뒤 사진을 내렸다. 그리고 더 며칠 뒤 중고장터에 내다 팔았다. 그 돈으로는 장을 보았다. 그 뒤로 장난감을 사는 일은 없다. 


유년 시절의 어떤 조각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 훔쳐간 것 같기도 하다. 차마 색출해 낼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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