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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12 불행의 늪

 행복에는 적당함이 있다. 건강과 단란한 가족, 친구들, 적당한 부유함, 적당히 즐거운 유년의 기억, 적당히 풀리는 일. 그러나 불행에는 적당함이란 없다. 불행은 무자비하다. 가난하다고 해서 질병이 피해 가는 일은 없다. 서로를 무너뜨리는 가족이라고 해서 경제적 파산이 피해 가는 일은 없다. 불행은 다른 불행을 불러오고 돋보기가 되어 이전에 있었던 불행을 커다랗게 보이게 한다. 가난은 질병을 더 지독하게 보이게 한다. 경제적 어려움은 가족관계의 파탄을 더 도드라지게 한다. 행복에는 끝이 있을 수 있어도 불행에는 끝이 없다. 이만하면 되겠지 하려는 찰나, 불행이 가지고 온 다른 불행에 짓눌리고, 새로운 불행은 더욱 거대한 불행을 불러온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 불행에 짓눌린 운명은 희망을 꿈꾼다. 비극과 불행 속에서 꿈꾸는 희망은 부도난 어음처럼 공허한 것이 대부분이다.          


 큰누나가 조금 이상해 진 것은 내가 열한 살 무렵이었다. 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녀는 고등학생이 되자 말이 없어졌다. 환한 웃음과 유머도 사라졌다. 감정이 표백된 채 백지장 같은 얼굴을 하고 좁은 방에 틀어박혔다. 무엇을 견디려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나중에 그것은 우울증으로 진단되었다. 증세는 더욱 심각해졌다. 조증과 조울증으로 이름을 바꿔가던 큰누나의 증상은 역시 깨우침이 빠르던 큰누나답게 정신분열증이라는 막바지로 금세 다다랐다.     


 그러던 중 IMF가 찾아왔다. 말단 공무원에겐 별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다지 가깝지도 않은 사람에게 보증을 서 준 일이 있었다. 그 사람이 부도가 나 채무를 이행할 수 없었다. 다섯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쥐꼬리만 한 아버지의 월급이 생면부지인 그 사람의 채무를 이행했다.      


 게다가 아버지는 어리석었다. 인생을 역전시켜 줄 것이라는 확신으로 고향의 시골마을에 엄마 몰래 건물을 올렸다. 그 마을 읍의 이름을 따 00가든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지금은 무성한 잡초로 둘러싸여 폐허가 된 그 건물을 위해 수많은 빚을 졌다. 그러던 중 IMF가 찾아왔다. 이자 금리가 올랐다. 단지 돈이 부족했던 우리 집은 확실하고 명백한 가난으로 거꾸러졌다.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지은 지 30여 년이 된 방 한 칸의 낡은 아파트에 세들어 살게 되었다. 다섯 명이 지낼 수 없었다. 나의 부모는 시골마을 00가든의 옆에 가건물을 지어 살았다. 방 두 칸의 낡은 아파트에는 자주 환청을 듣는 나의 큰누나가 방 한 칸을 차지하고 드러누워 있었다. 온몸에 진물이 흘러 바짝 갈라진 피부를 긁고 있던 나는 혹시라도 가려움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될까 자주 가습기를 틀었다. 대학생이 된 작은누나는 자신의 옷이 상한다는 이유로 화를 내며 가습기를 껐다. 가끔 부모님이 집에 오는 날이면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망가진 그들의 삶을 눈앞에 펼쳐두고 서로를 죽일 것처럼 지독하게 싸워댔다. 그리고 많은 바퀴벌레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사춘기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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