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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13 조현병을 앓는 누나

 나의 큰누나는 영특했다. 학교에서 치른 지능검사에서 만점을 받았다. 학원 한 번 가지 않아도 가장 성적이 좋았다. 갖고 있는 많은 재능은 언제나 침착하고 사려 깊으며 조용한 성격 아래에서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성숙해가고 있었다.      


 그런 큰누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조금 달라졌다. 집 밖에 나가지 않으려 했다. 표정과 말이 함께 사라졌다. 비슷한 시기에 파산한 우리 집의 경제력만큼 성적이 떨어졌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수능 시험도 망쳐버렸다. 큰누나의 말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고 쑥덕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 문제를 풀 수 없었다고 했다. 전화번호부만큼 상장을 쌓아놓고 중학교를 졸업한 큰누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침대로 피신했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종종 죽음을 종용하는 이상한 말이 들릴 때만 방 밖으로 나와 어찌할 줄을 모른 채 울었다.     


 무지한 나의 부모는 그것이 귀신이 들려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었다. 병원보다 먼저 점집에 갔다. 용하다는 점집과 스님을 찾아가 생년월일을 들이밀었다. 큰누나는 집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보일 수 없었다. 누구는 삼재라고 했고 누구는 내년이면 괜찮아질 것이라 했다. 나의 부모가 큰누나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질질 끌고 데려간 무당집에서 굿 값으로 삼백만 원을 말했다. 삼백만 원은 없었으므로 결국 병원에 갔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굿을 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 년이 지나고 삼 년이 지나자 큰누나의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낡고 좁은 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 큰누나의 증상은 조울증으로 악화되었다. 어느 날은 짧은 유서를 적어놓고 집을 나갔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쭈그려 앉아 있는 큰누나를 찾아 데려왔다. 어떤 날은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굴었다. 옷을 빼입고 온갖 치장을 한 채 낡고 좁은 집을 마치 자신의 왕궁인 것처럼 생각했다. 증상이 심하면 엄마와 싸우는 일이 많았다. 서로가 서로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싸웠다. 어떤 날은 부엌칼을 들고 가족들을 위협했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다 너희들 때문이라며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칼을 들고 며칠 뒤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비는 만만찮았다. 잘못된 보증으로 차압된 월급에서 아버지의 어리석은 부채를 갚고 나면 돈 몇 푼이 남았다. 병원비는 월급의 반절이었다. 푼돈을 빌리던 나의 어머니는 이제 더 큰돈을 빌려야 했다.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낡고 좁은 집과 채무,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 집에 넘쳐나는 울음과 욕설과 폭언과 정신병적 증상과 싸움. 지독한 가려움과 짓무른 피부가 주는 쓰라림. 그 속에서 사춘기를 보냈다. 큰누나는 오랜 기간 입원할 수 없었다. 증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졌다 싶으면 퇴원했다. 우리 가족의 운명만큼이나 병원비도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함과 동시에 우리 집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계속했다. 그리고 집에 올 때마다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비극을 선사했다.     


 좁고 낡은 아파트에 들어온 큰누나는 내 방을 빼앗아 버렸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내가 철없는 중학생이던 어느 날 나는 방문을 열고 큰누나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베개 따위를 집어던지며 저주를 퍼부었다. 큰누나는 분명 깨어있었지만 자는 척을 했다. 반응이 없자 나는 물러나왔다. 나의 교육은 이런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이십 년 가까이 지났다. 나는 우울증으로 삶이 지저분하게 썩어가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점집이나 스님을 찾지는 않았다. 용기 내어 병원에 갔다. 죽기 전에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 나왔다. 약을 먹자 잠시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리고 큰누나 생각이 났다. 자신의 삶이 지저분하게 썩어가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이불을 뒤덮고 있던 큰누나. 어린 동생에게 폭언을 듣고도 자는 척을 해야 했던 큰누나. 나는 혼자 있는 싸구려 자취방에서 약을 먹고 큰누나 생각을 하며 울었다. 미안하다고 외쳐도 듣는 사람은 없었다. 사과를 받아 줄 큰누나는 지금은 계속된 치료로 지능이 저하되어 정신지체장애 판정을 받고 나의 늙은 부모와 함께 산다. 나는 혼자서 울고 또 울었다. 싸구려 장판에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한참을 울다가 잠이 들었고 아침이 되었다. 나는 다시 돈을 벌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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