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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14 지옥과 닮은 집

 아버지의 잘못된 보증과 어리석은 채무로 생긴 빚은 집을 팔아 갚았다. 그래도 아직 빚이 남아 있었다. 남은 돈과 일가친척에게 구걸하다시피 끌어온 돈을 모아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의 가장 좁은 집에 세를 얻어 이사했다. 큰누나의 수많은 종이학과 편지들과 상장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아 유년기를 함께 보낸 친구들과 인사도 하지 못하고 죄지은 듯 쫓겨 나왔다. 이사를 하던 날 아침 나는 정든 우리 집 현관에 침을 뱉고 학교에 갔다. 학교를 마치고는 생소한 길을 따라 이사한 집을 찾아 갔다. 담배를 피우며 침을 뱉고 있는 고등학생 무리들이 나를 볼까 봐 마음을 졸이며 낡고 지저분하고 좁고 어두운 그 집으로 갔다. 그리고 13평짜리 그 집에서 중학생 시절을 보낸다.     


 5명이 지내기는 어려운 집이었다. 나의 부모는 조현병 증상을 보이는 큰누나와 이제 대학생이 된 작은누나, 그리고 중학생인 나를 그곳에 남겨두고 시골의 가건물에서 지냈다. 언제나 어두컴컴했던 그 집에는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 스티커들이 유리 혹은 유리와 비슷한 곳이면 어디든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타일이 무너진 화장실 벽면은 커다란 만화 포스터로 가려놓았다. 천장에는 야광별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그러나 만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거실과 안방을 겸한 방 한 칸에는 나와 작은누나가 지냈다. 작은누나는 침대에, 나는 작은누나의 싸구려 옷들로 둘러싸인 바닥에서 잤다. 현관 앞에는 관 짝 만한 방이 있었다. 사람 한 명이 누우면 꽉 찼다. 그곳에는 언제나 큰누나가 누워있었다. 곰팡이가 여기저기 멍처럼 들어있는 부엌에는 언제나 설거지거리가 쌓여있었다. 그곳에서는 설거지거리만큼 바퀴벌레도 자주 눈에 띄었다.     


 종량제 봉투 값을 아끼려고 그득그득 눌러 담아놓은 똥 휴지들을 버리는 일은 내 일이었다. 큰누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집 밖에 나갈 수 없었고 작은누나는 그 일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다. 똥 휴지들이 가득 찰 때마다 밟고 또 밟아 종량제 봉투에 담으면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듯이 팽팽해졌다. 어느 날은 무리할 정도로 눌러 담은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가는 길에 그것이 터져버렸다. 휴지들이 바닥에 매화꽃처럼 흩뿌려졌다. 나는 그것들을 조심스레 주워 담았다. 버스를 기다리던 친구들과 여학생들이 그 모습을 보고 낄낄대고 있었다. 그것보다 수치스러운 일은 늘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그 좁은 집에 친구를 데려 온 일이 있었다. 그 날은 예고 없이 부모님이 와 계셨다. 인사를 나누고 나와 친구는 게임을 헸다. 이내 나의 부모는 고함을 지르며 서로 싸웠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시팔년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도 지지 않았다. 서로 죽일듯한 표정으로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싸웠다. 나는 숨죽이며 컴퓨터 게임을 하는 척했다. 큰누나가 누워 있던 작은 방에는 기척도 없었다. 그 집에는 여러 사람으로 가득 들어 차 있었다. 그때 내 친구는 무슨 척을 했을까. 그 후부터 나는 집에 친구를 들인 적이 없다.        

  

 어머니가 와 있던 어느 날, 언제나 작은 방에 누워있던 큰누나는 뒤집어 까진 눈으로 안방을 벌컥 열었다.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자기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너희들 때문이라며, 다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쳤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대치상황이 정리되고 큰누나가 칼을 내려놓자 엄마는 큰누나의 머리끄덩이를 붙잡았다. 큰누나도 지지 않았다. 머리끄덩이를 잡고 있는 어머니의 등 뒤에서 나도 큰누나를 향해 욕을 내뱉었다. 어머니가 큰누나의 머리채를 내려놓자 부엌 바닥에는 바퀴벌레의 이동 경로를 표시해 놓은 것처럼 큰누나의 머리카락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 시절,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잘 지내냐는 물음에 답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웠다. 아는 친구를 만나도 표정을 굳힌 채 못 본 척 했다. 수치심을 마주하느니 피해 버리는 것은 언제나 더 쉬웠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의 어머니는 악을 쓰며 싸우거나 머리끄덩이를 잡을 만한 기력이 이제는 없다. 나도 이제는 종량제 봉투값을 아끼려 무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집을 나와서도 나는 그 집에 자꾸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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