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모두 사춘기라는 것을 겪는다. 그것을 겪어야 성숙한다고 한다. 그 결정적 시기의 성숙의 방향은 한 인생에 걸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다들 어떻게 지나갔을까. 나는 지옥과 같은 그 집에서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도하면서 사춘기를 보냈다. 결국 사춘기랄 것도 없이, 성장이랄 것도 없이 당장의 하루를 버티는 것으로 만족했고 고통이 지나가지도 않았다.
그 집으로 이사 온 그때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급식이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공부 잘하고 얌전한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같이 먹었다. 친구들의 정갈하고 맛있는 도시락이 부러웠다. 그 시절 나의 도시락 반찬은 주로 냉동식품을 튀긴 것이었다. 언제나 작은 방에 누워 있던 큰누나가 엄마 대신 챙겨준 것이었다. 대부분 한쪽 면은 새카맣게 타 있었다. 타지 않은 부분을 조심스럽게 긁어서 진 밥과 함께 먹었다. 내 반찬을 나눌 수 없어 그 무리와 함께 먹는 것이 부끄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함께 점심을 먹을 적당한 친구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그럴 땐 같은 반 친구들의 도시락을 얻어먹었다. 포크 겸 숟가락은 손을 뻗어 반찬을 집기에 좋았다. 깨끗이 씻어 사물함에 두었다. 남의 밥을 얻어먹는 일은 언제나 주눅이 들어있는 내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싸움을 잘하는 친구들이 한바탕 훑고 간 친구들의 도시락에서 남아있는 것들을 먹었다. 하나만 달라는 사정에 주는 친구들도 있고 거절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도 다들 착한 친구들이었다.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 친구들의 것을 얻어먹어도 상처 주지 않았다. 혹은 내가 완전히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점심을 먹은 친구들은 매점에 가서 간식을 사 먹었다. 그러나 나는 용돈이 없었다. 남은 점심시간에는 책을 펴고 읽는 척을 하면서 나의 집에 대해 생각했다. 굶고 집에 오면 저녁으로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식사를 챙겨 줄 부모님이 안 계신 날이 오히려 더 좋았다. 부모님은 언제나 지독한 싸움을 챙겨 들고 오셨다. 그것을 마주하는 일은 허기보다 고통스러웠다.
생활의 여러 영역이 처참한 수준에 곤두박질쳤어도 가장 실감하는 것은 가난이었다. 그것은 싸움과 포기, 주눅과 죄의식, 수치심, 절망과 같은 수많은 형제들을 데리고 왔다. 그 시절 나는 컴퓨터가 좋았다. 프로그래머라는 것이 되고 싶었다. 종종 컴퓨터 자격증을 따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도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온 어머니에게 컴퓨터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단 돈 만원이 없었다. 옆집의 벨을 눌렀다. 아파트 청소를 하는 대가로 그 집에 살던 아주머니가 나왔다. 어머니는 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도 만 원은 쉽게 꾸어줄 수 없었다. 어머니는 간절했다. 십 분쯤 돈을 꾸기 위해 사정했다. 옆집 아주머니의 꼬깃한 만원이 어머니 손에 들려있었다. 어머니는 지쳐 보였다.
지독하게 귀한 돈 만원으로는 사소한 시험을 준비할 수 없었다. 그렇게 큰 것을 걸어야 한다면 가장 어려운 시험에 도전해야 했다. 서점에서 두 시간쯤 고민했다. 가장 어렵다는 컴퓨터 활용 능력 1급 필기를 준비할 수 있는, 만원으로 살 수 있는 가장 두꺼운 책을 골라 집에 왔다. 그러나 그 책은 중학교 2학년이 공부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나는 몇 페이지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가끔 어머니가 집에 오면 언제나 깨끗한 그 책을 보며 답답해했다. 학원에도 다니지 않는 아들이 뭐라도 공부하겠다고 해서 어렵게 돈을 빌려 사게 된 그 책을 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 비난에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어머니의 질책은 어쨌든 사실이었다. 내 게으름과 포기와 끈기없음의 증거가 되어 그 책은 집에 늘 놓여있었다. 무언가에 도전하는 것은 언제나 돈이 들었다. 그 집에서 나는 무엇에도 도전하지 않는 것이 더 도덕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명절에 오랜만에 집에 갔다. 아직 그 책이 있었다. 나 없이 했던 여러 번의 이사 중에도 누군가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책꽂이에 넣어두었어도 표지는 색이 바래 있었고 종이는 누렇게 변해있었다. 펼쳐보았다. 그림 하나 없이 재미없는, 오류로 가득한 문장과 질 낮은 재생지로 만든, 어렵고 복잡한 내용으로 가득한, 이름 없는 출판사의 책이었다. 그것은 만 원짜리 나의 사춘기였다.
나는 그 책을 골라야 했던 끈기없고 게으른 아이를 생각하며 다음번 이사에도 남아있을 그 책을 책꽂이에 다시 넣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