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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24. 2020

#16 면회

 큰누나는 열 번쯤 자살을 시도하고 열 번쯤 괴상한 화장을 한 채 외출을 하고 두 번쯤 칼을 들고 가족들을 위협하고 나서야 병원에 입원했다. 입원이 늦어진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말단 공무원인 아버지의 월급은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보증으로 떼인 돈이 빠져나가고 부채를 갚기 위한 돈이 뜯어져 나가면 아버지처럼 어리석은 돈이 남았다. 한 달 입원비는 월급의 절반이었다.      


 우리 가족은 큰누나가 입원을 하든 입원을 하지 않든 나름대로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다. 고통의 기회비용을 고통스럽게 계산한 끝에 입원을 결정했다. 얼마나 큰 마음을 먹어야 입원비를 낼 수 있는지 나의 부모는 큰누나에게 여러 번 설명했다. 그러나 큰누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 세상 바깥의 말들로 대답했다. 큰누나의 입원에 즈음하여 어머니는 파출부며 청소며 품삯 주는 일들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환자와 가족과의 관계를 강조했다. 일주일에 한 번의 면회는 입원환자 가족의 의무사항이었다. 나도 가족이었다. 주로 토요일에 면회를 갔다. 평일에 가야만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조퇴를 위해 담임선생님께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큰누나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절대 알려선 안된다는 부모님의 채근이 있었고 나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면회를 가는 날이면 어리석지만 권위를 잃고 싶지 않은 아버지와 일에 지쳐버린 어머니, 잔뜩 주눅이 든 채 몸 구석구석에 진물이 흐르는 내가 한 차에 탔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현명한 작은 누나는 함께 하지 않았다.     


 병원에 가면 아버지는 짐짓 목소리를 내려 깔고 의사와 상담했다. 자신이 얼마나 점잖고 상식적인 사람인지, 그래서 의사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다는 듯이 굴었다. 엄마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주먹을 한 대 갈기고 싶은 마음을 꾹 참다 보면 간호사의 부축을 받은 채 큰누나가 나왔다. 처방받는 약은 독했다. 큰누나의 눈에 흰자위만 보였다. 약이 시신경에 작용해 눈동자를 조절할 수 없다고 했다. 앞을 볼 수 없는 큰누나는 시체처럼 걸어 나왔다. 누나는 눈을 뜬 시체같았다. 그리고 병원이 강조하는 환자와 가족과의 회복적인 관계가 진행되었다. 


 큰누나는 주로 병원에 입원한 다른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를 죽이려 하는 환자, CNN 기자였던 환자, 이름난 갑부집의 안주인이었던 환자, 외계인에게 납치를 당했던 환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들 중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는 사실을 빼놓지 않았다.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찼다. 어머니는 억지로라도 잘 들어주었다. 나는 지독한 가려움과 말과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면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해가 져 있었다. 나에게는 일주일 중 부모님을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나는 지독한 결핍을 이야기했다. 구멍이 난 가방을, 친구들이 놀리는 신발을, 느려 터진 컴퓨터를, 너무 부족한 용돈을, 몇 벌 없는 옷을, 먹고 싶은 음식을 말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나의 아버지는 차를 길가에 세운 채 한바탕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고 나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의 부모는 도망치듯 시골집으로 내려가거나 좁은 집에서 서로 싸웠다.               


 나는 다시 일주일을 지나가야 했다. 내게 닥친 수많은 결핍과 현실의 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누나의 압도적인 눈빛을 생각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티다 보면 금방 지나갔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한껏 위축된 자세로 담임선생님께 아무런 이유나 말하면 면회를 위한 조퇴는 쉬웠다. 그때 나는 열네 살이었다. 지옥에 갇혀있었다.      


 그리고 나를 면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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