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생 리셋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완 Oct 17. 2021

인생 리셋의 시작

모든 삶은 아침에 시작된다

노인은 한참 동안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울려고 하거나, 말을 멈추거나, 하늘을 보아도 잠자코 듣기만 했다. 다 듣고 나더니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젊은 시절 어느 날, 다리 위에 간 적이 있네. 그날 자네는 마치 그 시절의 나 같더군. 나는 운명이 있다고 믿네. 그래서 징조 같은 걸 중히 여기고 또 알아볼 수 있지.”     


그때는 노인의 이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매주 이 시간에 이곳에 오겠나? 내가 알려줄 것이 있네.”     


노인의 말을 듣고 눈물이 날 뻔했다. 친구도, 가족도, 곁에 아무도 없는 나는 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고, 노인의 말은 구명튜브 같았다.     


“알겠습니다.”     


“대신 지켜야 할 것이 있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게나. 그리고 잠자리를 정돈하게나. 방은 늘 깔끔하게 유지해야 하네. 이것을 의식처럼 행하게나. 명심하게. 마치 신성한 의식처럼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잠자리와 주변을 정돈하게. 할 수 있겠는가?”     


잠깐 생각해 보았다.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 네”     


“내가 말한 것을 일주일 동안 지켰다면 찾아오게. 다음 주 이 시간에 보세.”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당시 나는 다니던 직장을 나와 배달 일을 하고 있었는데, 배달은 주로 밤이 수요가 많았고 페이도 좋았다. 하루는 밤늦게까지 배달을 하다가 아침에 깨어나지 못할 뻔했다. 겨우 일어나 잠자리를 정돈하고, 집을 정리하고, 다시 곯아떨어졌다. 그래도 약속은 지켰다. 나는 노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잡은 지푸라기를 놓지 않기 위해, 아침에 제 때 일어나기 위해, 몇 번 더 배달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정해둔 시간이 되면 귀가하고 쓰러져 잤다. 맥주도 먹지 않았다. 유튜브도 보지 않았다. 그저 절박하게,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 잤다.


 나는 일주일간의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조금의 변화도 느껴졌다. 비록 기상시간을 지키는 것과 잠자리 정돈과 주변 정리 같은 사소한 일이지만, 매일 아침을 같은 시간 같은 일로 시작했다. 경건한 마음을 먹으려 노력했다. 그 사소한 변화가 하루의 시작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하루의 진지함이 조금 늘어난다고 해야 하나, 그날 마주치는 일을 의식처럼 받아들이게 된다고 해야 하나.      


나는 약속한 대로 일주일을 보내고 노인의 집을 찾아갔다.          





그렇게 인생 리셋이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하생활자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