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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Sep 23. 2019

#8 폐쇄

 지하생활자는 폐쇄적이다. 외부의 경험들로부터 안전만을 추구한다. 그의 환경이 그에게 주었던 경험이란 것은 다분히 비참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을 버텨내면서 그는 바깥의 것들로부터 창문을 굳게 닫는 법을 배운다. 


 그 지옥같은 시절에도 몇몇 날은 좋았다. 가끔은 가족끼리 웃음을 나누는 날이 있다. 가끔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날이 있다. 가끔은 누나의 눈빛이 평범한 사람과 다르지 않은 날이 있다. 가끔은 또래 아이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는 날이 있다. 이제 이 상황이 계속되기를 빈다.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은 기대를 품는다. 마음을 놓은 며칠 후, 다시 지옥은 펼쳐진다. 이 전에 경험하지 않은 더 지독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모든 기대는 물거품이 된다. 사실 물거품 위에서 기대했다. 섯부른 기대로 마음을 열었다가 실망과 고통을 천 번쯤 얻는다. 다시 창문을 굳게 닫는다. 창문 위로 우박이 내리친다.


 그가 지닌 객관적이고 치명적인 열등함 또한 폐쇄적인 태도에 한 몫을 보탠다. 그것이 노출되는 순간 남들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게 될 지 알기 때문이다. 지금의 일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부모의 뜻을 따른다. 그렇게 그는 자신에 대해 노출하지 않는 것을 무척 노력한다. 애매한 웃음이나 서툰 거짓말로 자신을 가리는 법을 키워나간다. 나는 그 지옥같은 시절동안 나의 일을 절대 말하지 않았다. 창문을 굳게 닫아도 악취는 세어나온다. 내가 처한 상황과 내가 겪은 일들은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나를 공개하는 방법도 모르게 되었다.


 지하생활자는 외부의 경험들로부터 자신을 닫는 척 한다. 섯부르게 환경에 참여했다가 고통을 겪을 바에 창문을 굳게 닫아버린다. 자신을 공개하면 비극이 닥칠 것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그렇게 마음을 빼앗기지도 마음을 다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하생활자의 창문은 구멍난 비닐처럼 초라하다. 주변의 사람들과 흥미있는 것들에게 매번 마음을 빼앗기거나 마음을 다친다. 사람들은 나를 허용하지 않고 흥미있는 것들은 대부분 비싸며 다가오는 경험들은 어떤 고통을 숨기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다만 마음을 들키지 않는 능력이 있을 뿐이다. 악취는 세어나온다. 지하생활자는 한번 더 굳게 창문을 닫는다. 내리친 눈과 비와 우박과 돌들로 구멍 난 허름한 창문을. 그 허름한 폐쇄의 공간에서 대부분 비참한 꿈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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