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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07. 2019

#17 성인 ADHD 2

 지능검사를 받은 나는 심리상담사로부터 학창 시절, 행동이 과하지 않았냐는 물음을 받는다. 공부를 하는 데 문제가 없었냐는 물음을 받는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나의 학창 시절은 가난과 우울, 결핍으로 마비되어 침묵과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행동과 말이 소거된 채 그저 버티기만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장 얌전하고 말없는 학생이었다. 얼버무린 채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낡고 좁은 집에 숨었다. 어쩐지 슬픔이 찾아왔다. 꾹 덮어놓은 나의 치부를 생각지도 못한 물음이 들춰낸 것 같았다.


 온갖 검색으로 그 물음의 이유를 찾았다. 심리상담사가 그런 물음을 던진 이유는 나의 지능 지표 사이의 차이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지능검사는 언어이해, 추론, 산수, 집중과 같은 하위지표들로 구성된다. 이 지표들 사이의 유의미한 차이는 심리적 증상을 예견한다. 나의 경우 언어이해 지표와 산수 사이의 지표가 30점이 넘게 차이가 났다. 숫자를 거꾸로 외우는 어려운 과제보다 순서대로 외우는 간단한 과제의 점수가 더 낮았다. 이것은 확실한 성인 ADHD의 증거였다.


 알 수 없는 증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던 나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병 때문이라면, 치료하면 극복될 것이 아닌가. 지능검사 결과가 적힌 종이를 들고 정신병원을 찾았다. 상담의 과정을 거쳐 장황한 설명을 듣고 부담스러운 돈을 지불하고 ADHD 약을 처방받았다.


 집에 돌아와 바로 한 알을 먹었다. 불안과 좌절과 고통으로 요동치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현실을 생각하며 동시에 나의 가난과 결핍을 생각하던 두 갈래의 생각이 하나로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혼란스러운 사고 과정이 단순하게 바뀌었다. 나는 차분히 앉아있을 수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그것은 십 년이 넘는 시간을 병으로 날려버린 허탈함, 그 고통의 시간이 단순히 병일 수 있다는 허무함, 그간 받은 나의 상처와 내 사람들에게 주었던 상처, 그리고 놓쳐버린 시간의 결과 내가 쥐고 있는 초라한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슬픔의 무게는 서서 버티기에 버거웠다. 바닥에 웅크린 채 눈물을 쏟았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어도 눈물은 새어 나왔다. 나의 싸구려 월세집 더럽고 낡은 장판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참을 울고 나니 허기가 찾아왔다. 햇반을 돌려 간단하게 밥을 차렸다. 몇 숟갈을 뜨고 나자 지하생활의 시절, 우울증에 썩어가며 하루 종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나의 큰누나가 생각났다. 그녀에게 내던진 어리석은 말들과 행동이 떠올랐다. 가족 앞에서 밥도 먹지 못한 채 그 가난한 집에서 썩어가던 나의 큰누나. 형형색색의 알약을 먹고 흰자위만 뜬 채 누워있던 큰누나. 긴 투약의 시간으로 얼굴 골격이 바뀌어 이제는 누가 봐도 조금은 이상한 나의 큰누나가 생각났다. 이불을 뒤집어 쓴 그녀에게 나는 욕설과 저주를 퍼부은 적이 있었다. 숟가락에 얹힌 밥풀이 더러운 장판으로 굴러 떨어질 만큼 나는 흐느꼈다.


 그때 나는 혼자였다. 전화를 걸 사람도 없었다. 그날 나는 울음이 가지고 온 두통에 시달리며 밤이 될 때까지 차분히 앉아있었다. 언제나 현실과 가난과 결핍을 생각하던 요란스러운 나의 마음은 알 약 하나로 오롯한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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