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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07. 2019

#18 해리

 지하생활자의 현실은 고통스럽다. 그 현실성 없는 고통 속에서 지하생활자는 필사적으로 생존의 전략을 터득한다. 그중 하나는 그의 현실로부터, 현실이 만들어주는 감정과 생각과 고통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치는 것이다. 고통이 끝나도 지하생활자는 아주 멀리 도망쳐버린 자기 자신을 찾으며 세월을 보낸다. 결국에 상처 투성이인 볼품없는 자기를 만난다. 지하생활자는 그를 외면한다. 가난한 지하생활자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낡고 좁은 집, 미친 큰누나가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집, 가끔 보는 나의 부모가 욕을 하며 싸워대는 집, 나의 어리석은 아버지가 손찌검을 하는 집에서 살던 시절에도, 나는 잘 웃었다. 그것은 내가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유일한 것이었다. 서툴고 어설픈 미소는 세상이 건네는 고통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날 수 있는 내 유일한 표정이었다.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억울해도,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기분이 나빠도, 친구들이 나를 놀려도 서툰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을 사람처럼 살기 위해서는 웃는 낯이어야 했다. 가난과 결핍으로 어그러진 내 진실된 표정을 보이는 날에는 세상으로부터 쫓겨날 것만 같았다.


 그 지독한 지하생활을 벗어나 성인이 되자 감정들은 강렬하게 몰려왔다. 서투르게 감정을 폭발시키곤 했다. 그러나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알았다. 분노인 줄 알았던 것은 피해의식이었다. 부당함으로 읽었던 상황은 나의 어리석음이었다. 기쁨으로 느꼈던 감정은 비웃음이었다. 나로부터 멀리 도망쳐 있던 내 감정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점검이 필요한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감정과 생각을 유보해나갔다. 누군가 나를 애늙은이라고 부른다. 시간은 지나고 나이를 먹는다. 성격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나이를 먹은 가난한 나는 돈이 필요했다. 돈을 버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척한다.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다. 억지로 웃는다. 약자가 지어내는 서툰 미소를 짓는다. 지독한 공허함을 느낀다. 그 시절 나를 지켜 주었던 어설픈 미소로 하루를 보낸다. 마음이 가지 않은 사람과 일들을 기억에 넣지 않는다. 건망증에 시달린다. 내가 왜 이러지. 집에 돌아오면 오늘은 살았던 적이 없다는 생각이 몰려온다. 지하생활의 시간동안 학교에서 적당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서툰 미소를 내어보인 채 겨우 하루를 버티던 그때와 다를 바 없음을 느낀다. 몸과 머리는 유달리 피곤하다. 잠에 빠져든다. 아침은 나를 양칫물처럼 뱉어버린다. 다시, 누군가 조종하는 껍데기뿐인 내가 하루를 살기 시작한다. 그제처럼 어제같은 오늘이 펼쳐진다. 웃고 이야기하는 나는 나도 누구인지 모른다.


 지하생활자는 누군가가 습작한 각본처럼 남의 삶을 산다. 그 재미없는 각본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각본의 주인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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