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생활자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혈안이다. 고통으로 가득한 지하생활을 거치며 그가 마음에 깊이 새겨놓은 것은, 삶에는 의미가 있다는 믿음이다. 그 의미라는 허상으로 지하생활자는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꾸역꾸역 버텨낸다. 이제 오랜 시간 가난과 우울과 고통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지하생활자는 확실한 생리적 욕구가 아닌 이상 의미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많은 일들은 그 의미가 불분명한 가벼운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지하생활자는 언제나 허무하다. 의미 없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침대에 누워있기를 택한다.
지하생활자에게 의미라는 것은 다분히 이상적이다. 그에게 의미를 갖는 것은 대부분 결핍에서 비롯된다. 그가 지닌 결핍의 깊이만큼이나 그가 원하는 의미는 높다. 삶의 반전을 가져다준다거나, 가난과 우울을 벗어나게 한다거나, 고통스러운 마음을 다스릴만한 깊은 감동을 원한다. 무언가를 배운다거나, 사람을 만난다거나, 세상 바깥의 행사에 참여한다거나 하는 많은 일에 이런 식으로 과도한 의미를 원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짙은 의미를 던져주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가난하고 우울한 지하생활자가 가질 수 있는 경험이란 더 소소한 것일 수밖에 없다. 지하생활자는 필연적으로 헛헛함을 느낀다. 그의 보잘것 없는 삶과 함께 끝없이 반복된다.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거치고 성인이 된 후에 내게는 평범한 현실들이 펼쳐졌다. 사람을 사귀고 모임을 나가고 공부를 하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내게 다가온 그 상황들은 하나같이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관계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고 몇 번 나가던 모임은 스스로 발길을 끊었으며 하던 공부는 쉽게 접었다. 시작된 행동이 지속성을 잃어버린 많은 이유에는, 그것이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있었다. 생활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일은, 내가 지닌 결핍을 채워줄 만큼의 의미를 갖고 있지 못했다. 사람을 만나고 공부를 하며 취미를 갖는 일이, 나의 가난과 나의 고장 난 가족과 나의 질병과 나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과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자, 행동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런 무력한 소소함이 기다릴 미래를 위해 그토록 압도적인 고통을 버텨내었던 것인가.
지하생활자에게는 결핍의 크기와 비슷한 의미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의미 없는 귀찮은 일들로 휩싸여 있다. 그가 만나는 사람은 그의 짙은 고독을 채워줄 수 없다. 그가 하는 일은 그의 삶에 뚫린 구멍을 메울 만큼의 보람이 없다. 운동도, 공부도, 행동으로 표현되는 많은 일들은 결핍의 크기만큼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 이윽고 어긋난 크기의 꿈을 품는다. 침대 위에서의 공상으로 그치고 만다. 게다가 결핍을 물려준 가난한 그의 부모로부터 그런 걸 뭐하러 하느냐라는 물음을 먹고 자라온 지하생활자. 그는 의미 없던 과거를 닮은 의미 없는 현재에 산다. 결국 의미도 감동도 주지 않을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며 그런 걸 뭐하러 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지하생활자. 지하생활자가 보는 부지런한 사람들은 기만의 대상일 뿐이다. 지하생활자는 의미란 사람이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하생활자는 그를 뒤흔들어 줄 의미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오늘 하루도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