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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09. 2019

#20 자기연민

 지하생활자는 쉽게 자기연민에 빠진다.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절망에 빠진 자기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자기연민은 그가 처한 열악한 상황을 견디는 마취제 같은 것이라서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그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에는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한다.


 현실에 뜻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지하생활자는 그 이유를 궁금해한다. 지하생활자는 아주 쉽게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수많은 결핍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가난과 무력한 부모, 어설픈 가족, 질병과 같은 그의 환경은 지하생활자가 처한 위기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지하생활자는 자신이 처한 많은 위기가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자신과 같은 환경에 처했다면 이렇게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간단해졌다. 이것은 내 탓이 아니다.


 자기연민은 여기까지만 작용한다. 자기연민에 빠진 지하생활자는 행동이 소거된 무기력한 현재를 합리화할 수 있지만 그 상황을 극복하는 힘을 낼 수는 없다. 이미 자신의 처지는 환경이 선험적으로 부여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자기연민에 빠진 그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비극을 부여잡고 스스로를 안쓰럽게 여기면 될 일이다. 그에게 남은 결말은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뿐이다.


 지하생활자는 언제나 위기를 맞는다. 인간관계, 경제적 상황, 낡고 협소한 집을 나서서 겪게 되는 생활의 여러 부분에서 그의 결핍은 작용한다. 이 위기를 극복할 전략을 터득하는 것보다 손쉬운 것은 자신을 연민하는 것이다. 어려운 것을 택하거나 쉬운 것을 택하거나 어쨌든 시간은 흐른다. 그에게는 어려운 것을 할 만한 정신적인, 인지적인 여유가 없다. 그의 결핍이 짙게 내리쬐는 마음은 다 말라버렸다. 다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에게 분노했다가 다시 스스로를 연민한다. 


 지하생활자의 자기연민은 퇴행적이다. 기쁨이 존재하는 세상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자기 자신에 몰두하게 한다. 시도와 도전을 가로막고 자기 안에 갇히게 한다. 고통으로 가득했던 그의 과거를 곱씹는 것이 그의 일과가 된다. 지하생활자의 열등함은 자기연민의 시간을 거치며 더욱 짙어진다. 


 그러나 지하생활자의 자기연민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지독한 결핍과 고통은 사람들을 집어삼키며 그 모습은 공평성과 거리가 멀다. 그것은 때로 구조적이다. 그가 갖는 자기에 대한 연민은 때로 타당하다. 다만 자기연민이 결과적으로 좋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행동을 제거한다. 그의 결핍을 극복할 가능성을 줄이는 일이다. 자신을 연민하는 자를 찾아다닌다. 지하생활자는 이렇게 수많은 덫을 주변에 두며 그 삶을 개선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안쓰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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