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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완 Oct 07. 2019

#16 두려움

 지하생활자는 두려움이 많다. 이것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규명하는 일은 어렵다. 다만 두려움을 민감하게 느끼는 체질로 지하생활자는 교육된다. 이것은 꽤 지속적이고 은밀해서 결국에 지하생활자는 스스로 원래 겁이 많은 성격이라고 여기게 된다. 지하생활자가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한 순간은 수많은 교육이 지속된 후이다. 이제 지하생활자의 두려움은 그의 영혼 속에 새겨진다. 그는 두려움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 든다.


 먼저 사람이 두렵다. 지하생활자의 성장기에는 언제나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어리석은 부모가 등장한다. 아비는 규율과 복종을 강조한다. 그 서툰 가부장은 자식의 두려움을 먹고 산다. 훈계의 과정에 자녀의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는 완전한 훈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의 훈계는 자녀가 눈물을 흘리고 복종의 자세를 보이며 두려움에 벌벌 떨 때까지 지속된다. 자녀가 잘못했다기보다 삶에 지쳐버린 왜소한 그의 기분이 언제나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자녀에게서 찾는다. 아동이라면 다분히 가능한 일들이 그에게는 탐탁지 않다. 매사 탐탁지 않은 그의 기분은 아동이 보이는 혼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동을 제압하는 일은 그의 가난이나 사회에서의 낮은 위치, 왜소함을 극복하는 일보다 간단하다. 그는 자신의 과제보다 아동을 제압하는 데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는 미숙한 아동의 서툰 행동과 말, 생각, 태도와 같은 것을 공격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이 가장으로서 갖는 권위를 회복한다.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낸 지하생활자는 이제 사람이 두렵다. 어른은 언제나 별 일 아닌 일로 화를 내는 존재이며 화가 나면 협상의 여지 없이 내게 밀고 들어와 끝내 제압하는 자로 여겨진다. 내 행동과 생각과 말과 태도는 언제나 공격의 빌미가 될 만큼 미숙하다. 이제 지하생활자는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짓기 어려워진다. 타인의 말은 깊게 들어와 지하생활자를 흔들어 놓는다. 타인의 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타인의 평가와 기분이 지하생활자를 잠식하는 것을 허락한다. 타인에게 쉽게 제압당하고 쉽게 복종한다. 그것이 타인과의 갈등에 대응할 수 있는 최선의 문제 해결의 전략임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똑똑히 배운다. 서서히 모든 사람이 두렵다.


 지하생활자의 가난은 그의 행동과 도전의 용기를 거세한다. 그는 자신의 시도와 도전에는 언제나 돈이 든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 모든 시도를 철저하게 검열한다. 시도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실패는 곧 사치이며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동이다. 모든 지출은 심사숙고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 번의 지출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야 한다. 이런 몇 가지 기준을 세워두고 가능성을 엿본다. 안타깝지만 세상은 그렇게 관대하지 않다. 그리고 싼 게 비지떡이다. 지하생활자는 몇 번의 서툰 지출과 엉성한 도전을 거치며 전략을 수정하기보다는 어리석게도 그의 기준을 더 예리하게 가다듬는다. 이제 그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그는 결국 실패하지 않는 자로 남는다.


 사람이 두렵고 행동이 두렵다. 이 두 가지는 지하생활자를 세상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한다. 세상에 화를 내지 않고 완전히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고 모든 행동에는 실패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을 제어하려 드는 지하생활자. 그는 자신의 예리한 기준에 둘러싸여 그의 반경에 있는 사람과 행동을 제한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것은 세상이 나의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의 첨예한 기준에 들지 않는 세상이 문제라고. 그러나 이런 기만을 한 꺼풀 들어내면 온갖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가난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리고 서툰 한 아이가 무표정한 어른의 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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