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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텔 Apr 20. 2023

즐거운 일

즐거운 일은 자주 있다.

내일도 나는 무난히 즐거울 것이다.


전세사기에 모든 것을 잃고 마지막 남은 삶마저 포기한 사람들과,

카메라를 켠 채로 강남역 한복판에 몸을 던진 여고생과,

또 한 명의, 방금 이름 옆에 십자가가 붙은 누군가의 우상과...


요즘은 썩 유쾌하지 않다. 그래도 나는 곧 다시 즐거울 것이다.


몇 개의 슬픔을 부검하고 난 후, 이 감각에 어느 정도 무뎌졌을 거라 생각했다.

지난 며칠 동안 먹먹함을 누르며 버텨오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잘못된 건 하나씩 풀어나가야 하겠지만,

이 모든 부조리가 한데 얽혀 굳어버린 매듭이 이젠 도저히 풀 수 없어 보인다.

정말 단단히 잘못된 사회를 살고 있다는 비참함밖에 들지 않는다.

더 이상 이 슬픔을 해석하고 싶지 않다.


즐거운 일, 즐거운 일...

즐거운 일은 언제나 과정의 일부분일 뿐이다. 성취와 행복은 결과가 되지 못한다.

이 게임에서 결과란, 잘해봐야 백 바퀴 돌고는 보이지 않는 심판에게 실격 처리를 받는 일뿐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건 얼마나 순진한 말인가.


당신들을 신문에서 마주쳐야 하는 우리여서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들도 우리이기에 잘 알잖아요.

우리 스스로의 부고를 신문에서 볼 일이 없을 거란 사실에 안도하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당신들의 과정 중 어느 지점에는,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었는지는 아무래도 다 좋을 만큼,

영원할 것만 같은 순간이 한 번쯤은 있었기를 간절히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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