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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텔 Jun 10. 2023

증언에 대한 단상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김연수 작가를 처음 알게 된 <일곱 해의 마지막> 작가의 말 중. 내게 이야기가 어떤 의미로 작용하고 있었는지, 나의 이야기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결국 내가 왜 글을 써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 문구.


<일곱 해의 마지막>이 과거를 향한 이야기였다면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제목처럼 미래를 바라보는 이야기의 모음집이다. 후회에 대한 이야기에서, 후회를 떠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후회를 껴안고 사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 어떤 창틀 아래에서는 후회가 그렇게까지 멜랑콜리한 빛을 띄지 않고도 영롱할 수 있다는 이야기.


시간의 인과성을 역전시키자. 이미 알고 있는 어떤 미래를 향해서 삶을 살아가자. 그토록 평범한 미래가 분명 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지금의 아픔에 무너지지 않고 그저 걸어가자.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침내 삶의 태도가 직립보행한다. 결과를 저 멀리 유예한 우리에게 현재는 드디어 과정이 된다. 신념과 행동 사이를 논리적으로 연결할 수 있게 된다 - 좋은 생각 같은 건 필요 없다, 좋은 행동이 없으면.


이제 과거에 묶여사는 너의 마음을 애써 버리려 하지 않아도 돼. 그리움을 그대로 들고 미래로 가면 되거든. 거기서는 그게 꽤나 돈이 된다 하던데. 오히려 그 후회를 옆구리에 끼고 걸어갈 때는 또 다른 후회를 줍지 않아도 되잖아. 사람이 챙길 수 있는 후회에는 한계가 있거든.


"개별성에서 멀어진 뒤에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은 얼마간 서로 겹쳐져 있다는 거야. 시간적으로도 겹쳐지고, 공간적으로도 겹쳐지지. 그렇기 때문에 육체의 삶이 끝나고 난 뒤에도 정신의 삶은 조금 더 지속된다네. 우리가 육체로 팔십 년을 산다면, 정신으로는 과거로 팔십 년, 미래로 팔십 년을 더 살 수 있다네. 그러므로 우리 정신의 삶은 이백사십 년에 걸쳐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지. 이백사십 년을 경험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미래를 낙관할 수밖에 없을 거야."


생존이 전부다.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며 미래의 선착장까지 우리의 기억을 배달해야만 한다. 이 삶이 곧 증언이다. 지금껏 만난 것, 알게 된 것, 사랑해보았고 미워해보았으며 결국 잃었던 모든 것들에 대한 증언.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것을 쫓으려 하면 안 된다. 분명히 사라질 것들, 우리만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들을 쫓아야 한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증언하러 가야지. 그때 너랑 우리가 얼마나 존나게 멋있었는지를.




인용 출처: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저),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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