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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힘 Oct 22. 2023

1 남편_우리의 결혼은 우주의 신비

이렇게나 다른 우리 사이,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안녕 여보야. 오랜만에 쓰는 편지네. 그것도 타이핑이라니. 이렇게 타이핑해서 편지를 준 적이 내 기억에는 없었는데. 어쨌든 이렇게 편지를 쓰기 시작해. 우리는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르지. 어떻게 만나서 함께 살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게 우리의 삶인걸.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싶은 충동이 있지만, 우리 결혼에 있어서만큼은 그냥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려고 해. 우리의 결혼은 우주의 신비라고나 할까.

      

요새 유행하는 MBTI로 비교해도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르니까. 나는 극히 내향적인데 당신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나는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 보려고 하지만 당신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지. 나는 생각이 아주 많아 때로는 고뇌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지만 당신은 자주 행복한 기분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 (요새는 가끔 진지해 보일 때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우리가 그나마 맞는 구석이라고는 MBTI의 마지막 키워드네. 둘 다 계획성이 좀 떨어지니까. 그런 면에서는 그래도 합이 맞는구나. MBTI에서도 마지막 항목을 '생활양식'이라고 부르는데 신기하게도 하나도 안 맞는 것 같은 우리가 비슷한 생활양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래도 다행인 것 같아. 이마저도 비슷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각종 살림 분쟁으로 쉴 날이 없었을지도 모르니. 당신이 많이 참아준 덕분이겠지만. (이건 진심으로 인정해) 우리는 묘하게도 살림 분쟁이 거의 없지. 대부분 당신이 살림을 떠맡아 왔기 때문이지만, 다른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는 이런 쪽으로는 참 평화로운 것 같아. 이렇게 쓰고 있지만 당신은 분명히 다르게 생각하리라는 걸 알아. 이렇게라도 내 방어선을 조금은 구축해 두고 싶으니 넓은 아량으로 귀엽게 봐주길 바라. 당신 스스로 귀엽다고 엄청나게 강조하잖아. 그 우김을 인정해 줄 테니 귀엽게 봐주세요.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라서 이렇게 진심이 담긴 소리를 늘어놓고 있어. 이제 조금 더 진심을 담아 볼게. 내가 하는 말은 대부분이 뼈가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속에 뼈 무덤이 있는 것은 아니야. 무슨 가시고기도 아니고 내 안에 가시가 잔뜩 있으면 나부터 찔릴 텐데, 그렇게나 많이 가시가 있겠어. 이렇게 쓰고 보니 좀 찔리긴 하네. 어쨌든 중요한 건 말이지. 나는 늘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가슴에 있는 뼈를 말에도 싣고 싶은 마음. 이해 할라나? 당신이 나한테 솔직병에 걸렸다고 그랬잖아. 솔직하지 않은 마음으로 솔직하지 않은 말을 우리 사이에 놓고 싶지는 않아. 그래도 요새는 병은 떼고 솔직만 하려고 노력 중이야. 이렇게 생선의 잔가시를 골라내듯 마음속에서 고르고 골라 당신한테 하고 싶은 첫 번째 말이 있어. '당신 요새 참 멋있어. 고생이 참 많아.

    

생전 해보지 않았던 일에 기를 쓰고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해. 마음 같아서는 내가 다 도와주고 싶어. 물론 당신은 그걸 원하는 게 아니라 집안 빨래와 설거지 같은 걸 더 도와주길 원하겠지만. 그 부분도 요새 노력하고는 있잖아?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대로 재촉하지 않으려고도 노력을 하고 있어. 그 부분은 정말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인 것 같은데 쉽게 고쳐지지는 않네. 그렇지만 매우 의식하고 있으니 조금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변할 거야. 재촉하고 조바심 느끼는 내가 싫거든.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가롭게 살고 싶은 내 마음 알지? 그것 때문에 오히려 당신을 재촉하기도 했던 것. 미안합니다.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사는 나랑 일생을 함께 하느라 고생이 많아. 어느 정도는 인정하니까. 내가 저 너머 정신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통은 그런 내 세계를 주위 사람들에게 쉽사리 드러내지 않고 완급 조절이라도 하는데 당신은 내 옆에서 주야장천 보고 들어야 하지. 그 삶이 참 쉽지 않을 것도 같아. 특히 이렇게나 다른 우리 사이에. 그래서 또 편지의 첫머리에도 이야기했지만 이건 '우주의 신비' 아니겠어?

      

밤하늘에 별을 보면 몇 개 안 보이는 것 같아도 수십억 개의 별들이 떠있는 거라고 하잖아. 억이 뭐야. 그 단위가 억일지 조일지 경일지 누가 알아. 은하수 하나에만도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 별 중에 지구라는 곳에 사뭇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함께 살고 있으니 이건 엄청난 신비지. 우리 이 신비를 함께 잘 살아나가자. 지금의 당신은 이해되지 않아도 그때의 당신이 선택한 나니까. 가끔씩 이 우주의 신비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연애 당시 나한테 푹 빠졌던 이유를 떠올려 보기 바라. 때론 우주의 헤아릴 수 없는 경이로움처럼 우리 사이도 다 이해되지 않아도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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