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여봉봉! 오랜만의 긴 편지 잘 보았어. 타이핑한 편지는 처음 받는 것 같네. 편지하면 생각나는 힘 뺀 자기 글씨체가 생각나. 정확히는 힘 빠진, 그래서 보는 내내 배꼽 밑이 간질간질한 느낌말이야. 그 글씨를 보고 있으면 나도 같이 힘이 쪼옥 빠져 흐물흐물해진달까. 그래서 타이핑한 편지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져. 그래도 오랜만에 편지 받으니까 기분은 참 좋네.
우리의 만남이 우주의 신비라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야. 그 어떤 논리로도 설명이 안 되니까. 내 선택이지만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선택. 하지만 아직도 첫 만남의 느낌이 선명해. 그땐 지금 우리 사는 모습이 상상도 안 되었지만, 막연하게 잘 살 거라고 생각했어. 난 분명 행복할 것이란 믿음으로 한 선택이었으니까. 그땐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거든. 그 다짐은 힘들 때 나를 아프게도 했지만 말이야.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후회하지 말자. 후회하더라도 마음이 가는 쪽으로 선택하자 했으니까. 그랬던 만큼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남 탓은 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큰 어려움 없었을 땐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 사람들과 만남도 어려움보단 즐거움, 기쁨이 더 컸고. 난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결혼 후 여보와 아이들과 지내면서 점점 문제가 많아졌어. 자주 화를 냈고, 자주 울었고 힘들었어. 내 인생 시련의 시기는 중기에 몰아서 오나 보다 생각했지. 너무나 다른 우리가 한 가정을 이루고 한집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라니. 이럴 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몰랐으니까 했지. 그래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어. 내가 앞일을 걱정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아무 시도도 할 수 없었을 테니까.
대책도 없이 기분에 따라 인생에서의 중요한 일들을 선택해 왔지. 서점을 덜컥 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누구는 미리 계획 세워서 돌다리도 수십 번을 두드리고 했을 텐데, 난 일단 열기부터 하고 뒷수습하는 사람이니까. 문제가 많고, 그 많은 문제로 힘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후회는 안 해. 그렇게 대책 없이 열지 않았다면, 음 난 지금만큼 멋지게 살지 못했을 거야. 아니, 정확히는 치열하게.
내 삶에서 지금만큼 치열하게 살았던 적은 없었어. 누구는 대학을 가기 위해, 취업을 위해 인생에서 한 번쯤은 모든 것을 걸고 갈아 넣는 시간이 있을 텐데, 돌아보면 나에겐 그런 시기는 없었어. 늘 그냥 대충 살아도 그때마다 운 좋게 잘 되곤 했었으니까. 내가 잘해서,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 능력보단 운이 좋았었단 걸, 마흔이 넘어 알게 되었어. (그러니까 내가 럭키걸은 맞네) 그렇지만 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들을 자꾸 맞닥뜨리면서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어.
결혼이, 육아가, 새로 도전하는 일들이 나를 자꾸 들여다보게 했어. 자기도 알 거야. 나 내면하고 안 친한 거. 생각하는 거, 대화하는 거 참 귀찮아했지. 내가 결혼하고 가장 겁났던 말이면서 자주 들은 말이 “우리, 얘기 좀 해.”였어. 그때마다 얼마나 도망가고 싶었는지. ‘내가 또 뭘 잘못했나?’ 생각이 들고 자기가 미웠어. 나 남 탓 안 하려고 했는데, 자꾸 남편 탓을 하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어. 자기만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으면, 나는 참 행복하고 괜찮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나를 나쁜 사람 만드는지. ‘나는 문제없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오기가 참 어려웠어. 한 번도 그런 시도는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경험케 한 일등공신이 바로 여봉봉이야. 지금 당장 가부좌 틀고 공중부양을 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간디 스타일의 여봉봉과 단순 단순 초 단순, 먹는 게 곧 행복인 내가 나누는 대화라니. 들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서 그냥 듣고 ‘띠로리’ 같은 소리라 흘려보낸 적도 많았어.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신기한 일이 생긴 거야.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가도 책을 보다 보니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였어. 자기가 한 얘긴지 모르고 내가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 얘기할 때면 “그거 내가 언제 얘기한 거잖아.” 하는 일들이 많아졌어. 내 마음이 괴로워 찾아본 책과 강연과 교육을 받으면서 자꾸 자기 얼굴이 떠오르는 일이 많아졌지.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고, 심리상담소 옆방 삼 년이면 깨달음이 오나 보오. 그랬어. 내 마음에 관심이 가고, 왜 이런지, 무슨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보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자기가 하는 소리를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한 거야. 가랑비 옷 젖듯 그렇게 조금씩 내 의식에 스며들었나 봐. 나에겐 가랑비 정도가 아니었지. 어떤 날엔 돌풍과 함께 몰아치는 폭우로, 장대비로, 아프게 퍼부었거든. 그 모진 시련을 견뎌내고 나니 이제 장대비가 아니어도 보슬보슬 비로도 제법 장단을 맞출 수 있게 된 거지.
세상에 공짜는 없더라. 내가 힘든 만큼, 흘린 눈물만큼 성장했으니까. 예전 아무것도 모르던 마냥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냐고? 아니 절대. 나는 지금 내가 참 좋다. 세상엔 내가 모르는 재미난 일들이 너무 많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하다 보면 해내게 된다는 것을 알았어. 그건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였어. 아이들을 만난 것도. 안 해봤다면 후회했을 거야. 이런 일 저런 일 겪어가면서 내가 어제의 나보다 더 마음에 드는 내가 되었으니까. 지난날의 나도 좋았지만, 지금의 내가 더 좋고 앞으로의 나는 지금보다 더 좋을 거야.
여전히 단순하고 금방 잊어버리고, 먹는 게 젤 행복하고, 웃기도 잘하고 울기도 잘하는 나지만, 이해의 폭은 넓어지고 깊이도 더해졌지. 우리 사이도 더 좋아지고 있고.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디어 생겼거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에서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로 변하기까지 물심양면 도와준 여봉봉 고마워. 우리는 분명 점점 나아지고 있어. 우주의 신비로 만난 우리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이 또한 신비 아닐까? 참으로 어메이징 한 부부가 아닐 수 없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첫 번째 편지를 기념으로 한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