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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힘 Oct 22. 2023

3 아내_ 결혼 10주년 축하해

'띠로리'에서 '아하!'가 되는 기적



축하합니다! 여봉봉, 오늘은 우리 결혼 기념 10주년이야. 설마 몰랐던 건 아니지? 몰랐다 해도 서운하지는 않아. 염려 마. 나도 특별히 어떤 이벤트 생각하지 못하고 이날이 왔으니까. 며칠 전 잠깐 생각이 스쳐 지나갔는데, 금방 잊어버렸어. 알지? 나 요즘 무지 바쁜 거. 나만 바쁜 게 아니라 여봉도 몇 년째 주말 없는 월화수목금금금의 삶을 살고 있지. 오늘도 토요일인데 아침 9시부터 상담 시작이라 누룽지 한 그릇도 다 못 먹고 출근했으니 말이야. 요즘 우린 참 촘촘히 살고 있어. 10년 전 그날을 생각하니 아득해진다. 자긴 아직 학생이었고, 난 레슨이 많이 줄어서 생활비는 부모님께 도움받으며 살면서도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유유자적했을까. 지금보다 십 년은 젊었고, 볼살이 통통 오른 그때 우리의 사진을 보면 그래도 그땐 참 행복했었지 싶다. 내면은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어도 밖으로 보인 우리 모습은 그랬어.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우린 아이를 원하면서도 준비는 하지 않았지. 어떤 준비? 몸도 그렇지만 마음의 준비 말이야. 삶의 태도에 대한 고민이 없었어. 생각보다 늦게 첫째 도도가 우리에게 와주었기에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었어. 외형적인 준비에만 신경 쓰고 있었던 것 같아. 결혼하고 3년 동안 아이가 없으니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병원에도 가보고. 난임 클리닉, 용하다는 지방 어느 한약방에 가서 한약도 지어먹고, 운동도 하고, 자연 출산 공부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도 지금 하고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한 고민과 공부는 왜 못했던 걸까. 알면 비로소 보이는 깨달음일까. 아, 지금까지 ‘우리’라고 했는데, ‘나’로 바꿀게. 여봉이 어떤 생각과 고민을 했을지는 어렴풋하게는 알고 있지만, 실제 어땠는지 여봉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준비 없이 부모가 되고 나니 또 발등에 떨어진 불만 겨우 끄고 수습하는 하루가 이어졌어. 휘몰아치듯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더라. 두 번째로 우리에게 온 둘째 제제까지 함께 하는 순간, 나의 하루는 모터 돌 듯 쉬지 않고 가열 차게 돌아갔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 ‘나는 어떤 태도로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없었어. 아니, 질문조차 떠올릴 수 없었던 거야. 그러면서도 문득 아이들이 낮잠을 잘 때, 밤에 재우고 나서 몰래 방에 들어와 책을 보면서 복합적인 감정에 눈물 흘리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나에게 질문을 하게 된 것이. 한참 뚫려있던 구멍으로 뭐가 빠져나갔는지도 모르면서 그 허한 마음을 어쩔 줄 몰라 불안하고 두려웠던 시간들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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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어버렸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얼 좋아했는지, 생각이란 걸 하긴 했었는지, 날 행복하게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생각할 틈도 없고. 밀려드는 해야 할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해야만 하는 삶.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치우면서 이대로 내 삶이 끝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어. 나는 나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여봉도 만만찮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으로 장거리 운전을 하며 출퇴근했던 날들. 직장에서의 많은 부침에 힘들었고, 현실과 꿈꾸었던 미래와의 괴리감이 큰 만큼 상실감도 컸을 거야. 알아. 

     

난 감정 기복이 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평균 80점 정도는 되었던 것 같아. 가장 힘들었던 그 시기에도 말이야. 나와는 달리 의식은 공중부양 중인데 몸은 현실(똥 밭 같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여봉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기도 나도 참 힘든 시간을 지나왔네. 지금은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뀐 것 같아서 그때와 같은 마음은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그래. 물론 상황도 달라졌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1차원적이고 가시적인 문제가 2차원 3차원으로 확장되고, 정신적인 문제, 감정적인 문제들까지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몸은 분명 예전보다 편해졌으니까. 언어로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서로의 욕구를 더 잘 파악하게 되었으니 조율이 조금 더 수월해졌어.

      

결혼 생활을 통해, 그리고 아이들을 통해 나는 수동적인 삶에서 능동적 삶으로 다시 살게 되었어. 예전엔 주어진 것(문제없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문제 있는 삶에서 내가 선택하고 감사하자는 쪽으로 바뀌었지. 문제가 있고 없고의 차이도 있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이제 좀 생겼달까? 예전엔 조금 힘들다 싶으면 그냥 포기해 버렸거든. 그런데 지금의 문제는 포기할 수가 없는 거지. 아이들? 결혼 생활? 아, 물론 포기도 할 수 있지만, 내가 포기하기 싫었어. 왜냐하면, 내가 한 선택이니까. 행복하기 위한 선택이었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내 삶으로 증명해 내야 했어. 내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생각하려 노력해.

      

십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을 내가 만들고 있어! 내가 새벽 기상을 할 줄이야. 책을 읽고 글을 쓸 줄이야. 게다가 서점을 열게 될 줄이야. 이 모든 시작은 여봉과의 만남이었다고 생각해. 진심이야. 누구를 만나는 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 나는 믿어. 나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준 것도, 도서관에 데려가 처음 회원카드를 함께 만든 것, 심리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던 그 수많은 이야기와 ‘외로움’, ‘고독’과 같은 내 사전엔 없던 말을 입력시킨 사람도 모두 자기야. ‘띠로리’에서 ‘아하!’가 되는 이 놀라운 변화의 시작은 여봉봉이었어.

      

나의 무의식은 그런 당신의 존재를 알아봤을 거야. ‘저 사람이야!’라고. 나는 알 수 없는 이끌림이라 생각했지만,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욕구를 무의식이 끌어당겼던 거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더 나은 내가 되고 있지. 더 나은 우리가 되어가고 있어. 더 나은 부모가 되어가고 있고. 요즘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 아주 흐뭇하다고. 어제 초저녁부터 쓰러져 자는 동안 아이들과 책 읽는 거, 잠결에 들어도 참 듣기 좋더라. 계속 잠자리 독서는 아빠가 하는 거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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