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가 약한 사람의 온갖 몸부림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있구나 확실히 느낀 것은 2달의 유럽여행 동안이다. 여행 동안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심카드를 사지 않았고 길거리의 와이파이에 의존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당연하게도 연락에 무조건 빠르게 답장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화면 밖 세상을 눈에 담는 일이 더 행복했다. 여행에서 느낀 '자유'는 다른 언어, 다른 문화와의 만남도 있지만 한국과 다르게 가는 시간, 알람의 강박에서 벗어난 '자유'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PLAN A 축에도 못 끼지만, 혹시 아직도 알람을 그대로 방치해두신 분이 계시다면 이것부터 적용해 보자!
저는 아이폰을 쓰므로 아이폰 기준으로 쓰겠습니다 !
설정 - 알람 탭에 들어가면 수많은 앱들의 알람을 세세하게 관리할 수 있다. 알람은 보는데, 잠금 화면에 안나오게 한다던지, 배너만 뜬다던지, 내가 관심을 적게 주게 잘 디자인해보자.
나를 알람으로 괴롭히는 앱들은 종류가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바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메신저였다. 이놈들이 이동 중의 나의 시간을 와작와작 가져간다는 것을 발견. 그렇다면, 이동하면서 쓸 수 없게 데이터를 꺼버리자 ! 그리구 이동 중엔 꼭 책을 가방에 넣자. 1장만 읽어도 성공!
설정 - 셀룰러 에 가면 앱 별로 데이터를 쓸 지 말 지 설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wifi가 없을 때는 아예 업데이트도 알람도 안온다는 사실. 음하하. 개인적으로 이 방법으로 효과를 봤다. 나는 특히 페이스북이 심한데, 업데이트 눌렀다가 'no cellular data' 라고 뜨면, 아 내가 꺼놨지 하면서 낙담했다. 뱃지 알람도 꺼놔서 댓글이 몇 개 달렸는지 하나하나 뜨지 않게 세팅해 놓았다. 너무 귀찮아서 다시 설정에 들어가서 데이터를 켜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물론 이것은 중독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역시 내가 SKT를 쓰니까 SKT 기준으로 설명하면 요금/부가서비스에 가면 내가 쓰는 것보다 작은 요금제를 찾을 수 있다. 터치 한 4번 정도로 요금제를 바꿀 수 있다. (대리점 안가도 됨...) 한 번 바꾸면 1달 동안 요금제를 바꾸지 못하니까 작은 걸로 바꿔놓으면 바꾸고 싶어도 못바꾼다. 구럼 알아서 데이터를 작게 쓰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겠지... 본인은 6기가짜리를 쓰다가 너무 한도끝도없이 쓰는 나머지 3기가로 줄였다. 이것도 좀 많다싶기도 하구. 굳이 풀자면 "욕망의 끝을 보자 비싼 요금제 쓰기" vs "욕망을 인정하고 절제할 방법 찾기" 의 관점의 전환인데, 나는 전자에서 후자로 전환했다 !
개인적으로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한 방법이다. 물론 안하는 것보다는 조금 낫지만 앱을 숨겨놓으면 그냥 내가 터치 몇번으로 찾아서 쓰고, 지워놔도 계속 새로 다운받는다. 괜히 터치 여러 번 하고 기다리고 그 와중에 죄책감만 늘어난다. 페이스북은 쉽사리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서, 지웠다가 주말에만 설치해야 할까 고민 중이다.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페이스북 계정을 잠근다고 사라지는 친구들을 자주 본다. 그리고 그 글을 쓰는 친구들의 거의 대부분 다시 돌아온다 (...) 그만큼 페이스북이 얼마나 중독적인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페이스북을 비롯해 SNS가 얼마나 유해한지 증명하는 기사 같은 것은 굳이 첨부하지는 않겠다. 그냥 내가 나를 빼았기고 있구나 두려움을 느끼는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 방법은 정말 내가 나를 잃겠다 싶을 때만 시도해보도록 하자.
글을 쓰기 전에는 없던 플랜이었는데, 막상 쓰다 보니까 또 해외로 여행을 떠나버리면 되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추가해 보았다. 훌쩍 누구랑도 연락 없이 떠나버리면 그렇게 자유롭다. 죽지도 않고 친구들도 나를 그냥 여행갔다고 생각한다. 뭐 그래서 연락이 뜸해지거나 사이가 안좋아지면 원래 그럴 사이였을거야 생각하자 >.<
사실 한국에서 왜 알람에 그렇게 민감했을까 나를 잘 들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그냥 주도권을 남에게 넘기고 편하게 알람에 의존하고 싶구나" 라고 말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지금 현실을 완전히 마주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을까, 과장 같기도 하지만 흥미가 없거나 할 일이 없을 때 스마트폰을 켜는 나를 보면 사실인 것 같다. 여행을 나가서는 모든 장소와 상황이 새로운 상황이라서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되니까 스마트폰을 쓰는 일이 줄었다. 그리고 같은 도시에 오래 있어서 익숙해지면 이제 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돌아와서 이전과 같은 관성으로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여행 중의 나의 모습을 상기시켰다. 그렇게도 잘 살았잖아. 아니면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차라리 잠을 자려고도 해보고 있다. 묵혀놨던 책도 손에 들려보고 이렇게 하나둘씩 하다 보면 차츰 관성이 좀 약해지겠지 하면서 말이다.
나에게 가장 큰 변화는 여행하며 오랜 비어있는 시간 동안 조금 더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현재에 보다 집중하게 만들고 위에서 만들어본 어떤 플랜보다도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여태까지의 난리를 기록해보자 싶었다. 부디, 다른 이들에게도 나의 몸부림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