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같다구
처음 빠띠와 우주당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박근혜 게이트가 한창일 때였다. 그 때 내가 바라본 빠띠, 그러니까 ‘기술’을 이용해서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사람들은 마치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 같았다. 나에게 민주주의란 그저 외국의 사례에서 전해듣는 이야기인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작년에 우주당에서 진행한 스터디에 참여했고 그 연을 이어서 놀랍게도 같이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빠띠에 들어오기 전에 이야기를 나눈 과정도 특별했다. 기본적으로 개발 포지션으로 일하게 될텐데, 기술적인 부분이 부족하면 어쩌지, 내가 일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있을까? 생각했던 나는 내가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빠띠는 기본적으로 비전을 같이하는 민주주의 활동가를 필요로 하고 그런 사람 중에서 기술적인 능력이 있는 것이다. 띠용. 아 내가 정말 좁게 생각했구나 싶었다.
빠띠가 리모트로 일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일 하기 전까지 막상 어떤 느낌일 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켜고 책상에 앉아 첫 근무일의 그 느낌은... “아무 일도 없지만 아무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아침에 스탠드업을 하면서 숨가쁘게 그날의 일감을 정리하고 월요일이나 금요일엔 이번주 일감, 이번주 회고를 한다. 그리고 그 때 그 때 같이 공유해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언제 화상으로 통화를 할 지 시간을 미리 정한다. 중간 중간 각자가 한 결과물이 슬랙에 공유한다. 피드백을 요청하기도 하고 봇이 깃헙 커밋 로그를 뿌려주기도 한다. 또 중간 중간에 이슈가 되는 뉴스 혹은 조직에서 더 대화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계속해서 채팅이 흘러간다. 지금은 적응했지만 처음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ㅋㅋㅋ 아직 내가 빠띠의 모든 부분을 알지 못하는데 계속 새로운 정보들이 쏟아지니, 문맥을 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계속 듣는 수밖에 없었다. 첫 일주일은 정말 화장실에 갈 때도 슬랙이 계속되니까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누구도 감시하지 않지만 나 자신이 날 감시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리모트 근무는 내가 나 자신을 일하게 하는 법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한다.
팀으로 개발을 해 본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빠띠는 내가 경험해 본 사람들 중 가장 발걸음의 폭이 좁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거대한 목표를 정해 놓고 세밀한 계획을 짜서 달려가지 않는다. 또, 해보기 전 까지 모르는 일들은 기획 회의를 1시간 더 하는 것이 아니라 1시간 개발해서 일단 만들고, 괜찮으면 그대로 가고 별로면 피드백을 바탕으로 수정하는 식으로 간다. 이것이 내 일에 적용되었을 때는 더욱 쉽지 않았는데, 내가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수동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끔은 이 일이 얼마나 걸릴 지 시간을 측정하기보다 먼저 만들기도 한다.
빠띠는 우리가 바라는 가치, 민주적인 절차를 항상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매번 느끼고 있다. 그것이 우리 안에서 일을 하는 방식이 되었든 외부와 협업하는 방식이 되었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경험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계속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가이드나 우리 회사의 플랫폼들이 개발된다. 지금의 시스템 상에서는 생존하는 일, 외부에 금전적으로 환원되는 가치의 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거니까 그 순간 우리 내부에서 지키려고 한 가치들만 마냥 외칠 수는 없었다. 이런 긴장감이 모두의 민주주의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한 달 동안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빠띠스타일’을 익혔다. 지난 워크숍 때 우리는 ‘빠띠스타일’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다양한, 재미있는, 실험하는, 능동적으로, 섬세한, 투명한, 일상적인, 용기있는 다양한 단어들이 나왔다. 그것으로 나는 조금이나마 빠띠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빠띠 옷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가지고 있는 의제들이라는 새로운 천을 덧대보아야지.
초록머리의 이야기, 앞으로도 계속될거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