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포스텍 영재교육원 1기로 뽑힌 때는 우리나라에 아이폰이 들어오기도 전이다. 나는 2009년부터 교육을 받았고 그 해 말에 아이폰이 나왔다. 당시 교육원의 아이돌은 스티브 잡스, 세르게이 브린과 같은 실리콘밸리의 초기 성공으로 유명한 기업가들이었다. 그리고 목표도 두리뭉실했다. 서비스가 아니라 기술 중심이었고 최소 대학원을 졸업해서 내 기술을 가지고 나서 창업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과제를 할 때도 항상 현재가 아니라 5년 뒤에 출시될 기술을 예측하고 그때 가능한 사업 아이템을 상상했다. 그래서 정말 뜬구름 잡는 소리도 많았고 최종 발표를 들으면서도 저게 될까? 하는 주제들도 많았다.
교육 시스템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화가 없이 진행되고 있긴 하다. 4학기 동안의 온라인 과정과 7박 8일로 4번 캠프를 진행하는 과정이다. 대신 그 뒤에 심화과정이 생겼다 캠프를 회상하자면 나는 캠프와 교육 과정에 참여하는 일은 정말 좋아했지만 완벽한 PPT, 잠을 자지 않고 밤새 준비하는 일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매번 캠프 때 나는 큰 트러블 없이 팀원들이 모두 즐겁게 프로젝트를 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4번 캠프 내내 상을 탄 적이 없었고 결과에 조금 집중했던 마지막 프로젝트도 근소한 차이로 5위 팀이 되어서 4등 안에 든 적이 없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등수는 정말 의미가 없다) 당시 우리가 상상했던 비즈니스 모델과 아이템이 무려 9년이 지난 지금은 꽤나 실현된 것이 많다. 실현되지 않은 것도 많다. 특히 생물과 관련된 기술이 그렇다. 당시만 해도 토스와 같은 서비스는 정말 농담 같은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토스, 카카오페이 등등의 핀테크 서비스가 수없이 탄생하고 있다. 그 시간 동안 교육원의 교육과정도 많이 바뀌었는데, 지금의 아이돌은 엘론 머스크 혹은 그 사이에 성공한 한국의 창업자들이다. 그 사이에 성공한 예시들이 많이 생겼다ㅋㅋ 그리고 기술 기반이 아니고 서비스 기반으로 교육원의 철학이 바뀌었다. 이것은 교육원의 방향의 키를 잡고 있는 원장님의 생각의 변화도 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교육원 내에서 성과에 대한 압박과 다른 창업 시스템의 발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굳이 중학생들에게 기술 기반 창업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피드백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산업의 변화를 돌아보면, 9년 동안의 변화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하다. 이제,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다. 사실상 거의 모든 일상적인 행위는 스마트폰에서 시작된다. 취직이 힘들다 수준의 뉴스는 정말 일자리가 '없다' 수준으로 진화했다. 당시 미래 기술을 상상하던 우리에게 수많은 논문, 기술 전문 사이트들의 ~년 안에 상용화될 것이다 라는 예측은 대부분이 틀렸다는 사실도 지금 깨닫는다. 화학, 생명 등의 ~년 안에 나올 것이라는 기술은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 특정 산업의 발전 속도와 방향은 '사회'에 의해서 결정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IT분야의 기술로 한정하자면, 예측한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도 하다. 전반적으로는 사람들의 예측대로 발전하는 듯하다. 머신러닝 같은 기술을 지금 내가 당장 배워서 써 볼 것이라고 언제 상상이나 해 보았나. 지금 텐서플로우를 설치하고 깃헙에서 코드를 받으면, 내 컴퓨터도 당장 개와 고양이를 구분해 낼 수 있다.
당시 영재기업인 교육원은 엄청 빨랐다. 당시 한국에서 기업가정신이라는 단어가 생소함은 물론 그것을 가르치는 곳도 하나 없었다. 대학에서의 창업교육도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13년도부터 창업 수업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당시 내가 교육받을 때의 환경은 지금과 꽤 달랐다. 스타트업과 관련된 정보는 내가 챙겨 보면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을 정도였고 이제 막 아이폰, 안드로이드 앱을 만드니 많이 하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수많은 분야에 자리 잡은 서비스들이 존재한다. 창업을 위한 공간, 정부 기관, 네트워크가 정말 많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당시 교육을 받을 때는 고등학생 / 막 대학생이 된 상황이라서 들리는 정보의 양이 크게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요즘은 영재기업인 교육원이 아닌 다른 교육기관에서 엄청난 양의 예산을 들이부어서 창업교육에 힘을 쏟는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 창업과 관련된 강좌와 정부 예산이 편성되기 시작했다. 기관과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프로토타이핑 단계까지 가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개인적인 경험과 관찰에 따르면 영재기업인 교육원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은 대학에서도 충분히 금방 배울 수 있으며, 오히려 그것과 연계된 더 다양한 기회가 있다. 크게 경쟁력 있는 교육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아직도 중, 고등학생을 전문으로 하는 이렇게 경험치가 쌓인 프로그램은 없긴 하다. 스타트업 열풍이 거세다 보니 고등학생들이 창업에 뛰어드는 일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온전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까지 가는 일은 차원이 다른 일이지만 말이다. 어느 누구도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지금의 창업문화는 새로워 보이는 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도전적인 '재미있는' 일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엄청난 노동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그리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으니까 동료와 함께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여러 명의 노동력이 투입된다는 뜻이다. 7박 8일 동안 캠프를 하면서 함께 하는 일, 지속 가능한 일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적었던 것 같다. 5,6년 전만 하더라도 '먹고사는 일'에 대한 감각이 지금보다 훨씬 없었다. 삶의 여러 부분을 누군가, 수단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소비에 필요한 '돈'도 그렇고 '재생산 노동'에 대한 감각도 그랬다. 그렇지만 지금은 '밥 먹고 사는 일'의 무게는 이전과 다르게 들린다. 최대의 이익을 원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같은 기술력을 가지면 이미 안전하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은 훨씬 많고 그것을 마다하고 창업이라는 선택지를 누르는 일은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위험하고 무모한 일인지도 안다. 이걸 고등학생 때부터 가르친다는 사실이 가끔 들으면 무섭기도 하다. 나의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혼자서는 절대로 기존의 수많은 노동이 투입된 서비스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냥 '성공'으로 퉁쳐지는 일확천금의 꿈을 학생들에게 주입해서는 안된다. 물론 영재기업인 교육원은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을 정의하고 그것을 위한 '기능'과 사업을 정의하는 방법론을 사용하지만, 실상 그것을 이루어 낼 동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나의 경우에는 일확천금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다. 우리가 바라는 대단한 '변화' 수준의 비즈니스 모델은 철저히 계산되어야 하며 엄청나게 많은 심리적 압박과 운, 그리고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나라는 점점 더 신자유주의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이 우리나라 시장에 수없이 진출했다. 우리는 '시장'이라는 종교 안에서 '경쟁'이라는 방법으로 살아남기를 끊임없이 강요받고 있다. 고등교육은 끔찍하다. 대학생활은 학점, 스펙으로 치환된 지 오래다. 이전보다 훨씬 치열해진 대학교 입시 경쟁은 학생들의 삶 자체를 '대학입시'라는 목적으로 모조리 식민화한다. 우리의 취미생활, 우리의 선호, 우리의 경험 한 톨 한 톨이 몽땅 '대학입시'로 몰린다. 그게 아니라 마이스터고를 선택하면 그 앞에는 죽지 않는 것이 신기한 노동환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고등학생이 현장실습 중에, 혹은 그 이후에 취직한 곳에서 죽어간다. 우리는 죽기 위해서 노동을 고른 것이 아닌데. 대학을 고르지 않은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학벌이 부족하다는 패배주의와 끔찍한 수준의 노동환경의 낙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과연 창업교육이 변화와 새로운 가치를 위한 수단으로 정상적으로 작동할까? 나는 전혀 불가능하다고 본다.
내가 영재기업인 교육원에서 바랐던 세상은 죄다 기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두가 즐거운 세상',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세상' 따위였다. '모두에게 이동권이 보장되는 세상'과 같은 구체적으로 기술적인 미래는 나에게 전혀 와 닿지 않았다. 그때 누가 빨리 가르쳐 줬으면 좋았겠지만 뒤늦게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지. 영재기업인에서 말하는 "기술로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은 진리가 아니고 그저 믿음일 뿐이다.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 공유를 할 수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몰아낸 것은 결국에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의 분노 그 자체이고 또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의 시스템, 거리를 좁히면 내가 속한 모든 조직, 단체의 예민 함이다. 기술은 변화에 양념을 칠 수는 있겠지만 기술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리고 기술은 그 자체로 선하고 좋은 쪽으로 발전하지 않으며 사회의 변화의 기울기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기술이 대단하신 분들이 옥시의 가습기를 승인했지만 그 기술은 많은 생명을 앗아간 더러운 자본주의적 욕망과 다름 아니다. 나는 책을 읽고 친구들과 토론하며 광장에서 배우면서 내가 실제로 느끼는 문제는 창업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사실은 자본의 논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느끼는 문제 자체가 반자본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문제 해결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할 '정치'라는 기술이 오히려 더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모두가 즐거운 세상'은 그야말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올 수 있는 세상에 아닌가! 또,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을 모두 만들어낼 수 있지 않다는 사실도 알았다. 쉽게 생각하면 자본가가 엄청난 수익을 얻는 세상과 노동자가 안전하고 높은 임금을 받으며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은 지금까지는 불가능했다. 뭐 굳이 정치든 기업가정신이든 아니더라도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많다. 기업가정신은 정말 일부 일부 일부의 생각일 뿐이다.
2,3년 전까지 나에게 '창업'이라는 열망은 새로운 조직,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도구였다. 그렇지만 박근혜 게이트, 강남역 사건은 내가 얼마나 세상을 작은 안경으로 보고 있었는지 깨닫게 해주었고 '기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거나 창업을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허상임을 깨달았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몇 년 만에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이 아니다. 지금 당장 영재기업인교육원의 교육생이 아니라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교육원에서 할 일은 '성공한 기업가'에 대한 꿈보다는 '현실'에 대해서 배우는 일이 더욱 급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교육 중간에 자신이 바라는 세상이 교육원에서 주입하고자 하는 기업가정신으로 만들 수 없는 세상이면 빨리 헤어져 주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을 학생이 선택하기는 어렵다. 내 기억에 교육원에서의 경험은 중, 고등학교 어디에서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쓰다 보니 교육원의 문제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실제로 겪는 일상에 대해서 배우지 않는 점수와 입시를 위한 '소외된' 중, 고등학교 교육에서부터 있다. 그럼에도 내가 우려하는 것은 학생들이 가지는 소중한 꿈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행착오가 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혹시 교육생들 중에 자신이 교육원과 맞지 않는다면 그것이 능력이 부족하거나 못나서 그렇지 않다는 것도 말해드리고 싶다.
최근에 교육원에 대해 느끼는 회의감을 찾아서 쭉 적어 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원의 경험들은 내 몸에 배어서 항상 감사하고 있다. 많이 배웠다. 그렇지만, 기업가정신이라는 것은 세계적, 국가적 이데올로기이고 그것을 내가 받아들일지 말 지는 나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다. 그 가치를 내재화하지 못하는 당신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