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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 Jun 14. 2018

컴퓨터 기술과 자본 그리고 학교

영상처리 수업을 들으면서 든 생각

이 화면에 어찌나 설레던지

처음 컴퓨터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때는 까마득하다. 20년은 되었을까. 처음엔 그저 신기해서 배우고 싶다고 엄마를 졸라 다니기 시작한 학원에서, 대학에서 이렇게 전공의 졸업을 앞두고 있으니까 깜짝 놀랍기도 하다. 그리고 컴퓨터라는 물체와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요즘들어 크게 느끼는 중이다. 알고리즘을 어릴 때부터 공부하면서 그 과정에서 추구해야 하는 '효율성', '최단 시간' 등등 알게 모르게 내 일상 속에 녹아들었다. 거기다 컴퓨터라는 기술이 얼마나 자본의 증식에 기여를 하는 지 차츰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깨달으면서 내가 공부하는 일에 어떤 부분에서는 무섭기도 하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만들어낸 컴퓨터에서 동작하는 서비스의 원리를 내가 얼핏 이해할 수 있고 그것에 숨겨진 자본의 욕망을 이해할 때 정말 두렵다.


학교에서 바이오메디컬 영상이라는 과목을 듣는데 다른 분야와 훨씬 다르게 이 기술은 정말 '사람'을 위한 기술로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장기들의 영상을 분석해서 수술을 돕는 소프트웨어들.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기술들은 모두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있는 커뮤니티. 기술자에겐 정말 이상적인 이야기다. 누구나 기여할 수 있는 오픈소스 커뮤니티와 그 기술로 실제로 환자들의 건강을 개선할 수 있다는 효능감. 그럼에도 걱정되었던 것은, 실제로 이런 고급 의료기술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돈이 많은 사람에게 제공되고 그들의 삶을 연장시키는 데 쓰이는 게 아닐까? 라는 걱정이었다.


결국 그 걱정은 강의 거의 말미 쯤에 이 기술과 관련된 회사 방문 수업에서 터졌다. 영상 정합과 관련된 기술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사람의 얼굴을 3D스캔해서 정합한 뒤, 그 크기를 모두 수치화하고 그것을 통해 성형을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표준적인 얼굴형 데이터도 제공되고 미스코리아의 얼굴형 표준 데이터도 제공이 된다. 그리고 내 눈, 미간, 코 등의 크기의 비율을 자동으로 컴퓨터가 계산해 줘서 무언가 '황금비율'과 같은 이상에 얼굴을 맞추어서 성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다. 뼈를 옮기고 깎고 하면 그에 따른 내 얼굴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다.


성형외과에서 사용되는 모 소프트웨어 / 캡쳐화면


너무 화가 났고 대체 이 강의 들어서 뭐하나 싶었다. 겨우 평온을 찾았는데, 기술은 정말 기술일 뿐이다 라고 내 자신을 다독였다. 기술이 제아무리 좋아도 그 기술의 사용 방향은 사회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은 좋은 경험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데 쓸 수 있는 영상처리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해서 자본과 여성혐오에 부역하는 용도로 쓰일 수도 있다. 10몇주차까지 수업을 들으면서 영상처리 기술의 효용성에 감탄하면서 뿌듯하게 듣고 있었는데, 학기 거의 마지막에 이렇게 기술에 대한 맹신의 균형을 잡아주는 좋은 사례가 언급되어서 오히려 고마워해야 될 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술을 공부하면서 항상 기술이 바라봐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학교에서는 종종 중립을 자처하거나 자본에 부역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교수님들이 계신데, 아직 가치관을 형성중인 학생들에게 본인들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잘 알고 계실 테다. 그리고 정말로 공부를 열심히 하면, 그러니까 좋은 기술자가 되면 어마어마한 연봉을 약속한다. 요즘 그렇게 취직 어렵다고 난리인데, 컴퓨터학부에서 노력한 사람은 항상 취직이라는 보상을 받는 식으로 지금의 대학이라는 시스템이 유지된다. 이미 진리 탐구의 장이라기보다 취직을 위한 학원이 된 지 오래다. 또, 누군가에겐 그것이 간절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을 위한다는 것이 뭘까? 다들 나 한몸 우선 적당히 배부르고 건사할려고 사는 건데, 이렇게까지 비판적일 필요가 있을까. 그럼에도 나의 걱정은 그렇게 가치에 대한 판단을 미뤄둔 채 마치 히틀러의 지시를 평범하게 따라 학살을 자행했던 공무원들처럼 혐오와 차별에 기대어 계속해서 누군가를 배제하는 일이 일상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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