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타 Jun 27. 2018

머리카락을 기르면서 겪은 일들

여성혐오, 맨박스는 내 곁에

내 머리카락의 수난사


내 머리카락은 나의 것이지만 정말 나의 것이 된 지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에는 엄마가 원하는 길이가 있었고 짧게 자르면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중학교 때는 여느 중학교처럼 두발 규제가 있었다. 머리카락에 대해서는 나는 규정과 싸우는 것보다 회피하는 편을 택했다. 다른 규정들에는 수시로 불만을 표했으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감각은 살아있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머리 스타일, 만화 캐릭터의 머리 스타일을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그 압박의 강도가 더했다. 단지 나이를 한두 살 먹었다고 해서 우리가 공부를 위해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야 했다는 것은 너무 억울했다. 심지어 2학년 때, 아마 그때 서울인가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발표되었던가 그랬다. 전교회장이 두발규정과 학생의 성적은 상관없다는 것을 학생회장이 돌리다가 선생님들이 강제로 회장직을 그만두게 시킨 적도 있었다. 규정에 맞지 않는 학생들을 일렬로 (족히 100명은 되었을 것 같다) 학교 건물 앞에 엎드려뻗쳐를 시켜 놓고 차례로 각목으로 체벌을 하는 그런 장면을 전교생이 지켜보는 기괴한 기억도 남아있다. 그런 폭력에 참으로 익숙해졌었다. 그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나는 무작정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아마 새내기 때 날 본 사람들은 헬멧처럼 머리카락을 두르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할 거다. 당시엔 한창 예쁘게 보이는 일에 관심이 있었고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에도 항상 귀를 기울였다. 주변에서는 짧은 머리가 예쁘다고 했고 그 이야기를 입학한 3월부터 한 2달쯤 들으니 귀에 딱지가 앉았다. 그래서 잘라보았는데, 사람들이 엄청 좋아했다.


귀엽구만...

그 뒤로 나의 주된 관심사는 한, 두 달마다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일이었다. 단지 머리 스타일로 바뀌는 외면적인 내 이미지에 재미를 느꼈고 염색도 해보고 파마도 해보고 난리였다. 특히 충동적으로 머리를 초록색으로 한 뒤로부터는 염색의 즐거움에 눈을 떠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짧은 머리로 시도할 수 있는 스타일을 대략 다 시도해 보고 싫증이 났다. 마지막 선택지는 머리를 기르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찾아온 시련은 바로 입대라는 피할 수 없는 관문이었다. 2년간 3주마다 잘라야 했던 의 내 머리카락에 애도를 표한다. 분명 내 머리카락이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내 마음속의 열망은 전역하고 나서는 더했다. 규정대로 짧게 잘라야만 했던 그 고통은 잊는다고 쉽게 잊히지 않았다. 내 머리카락에게 더 이상의 감시와 처벌은 무리다.


왜 머리를 길러야겠다 마음먹었을까?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이 있다. 감시자의 규칙이 감시당하는 사람에게 육화되는 순간. 그때부터 규칙은 자발적으로 작동한다. 나는 군대에서 그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머리 자르기를 끔찍이 싫어하는 이병, 일병 때의 친구들. 그렇지만 병장이 되면 오히려 머리털을 귀찮아하는. 그리고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도 비슷한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는 사람들. 나 역시도 참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싸움은 너무나도 무의미했기에, 나는 단념했다. 그렇지만 역시 그 반동은 군대를 끝마칠 쯤에 찾아왔다. 가만히 놓아두면 제가 자라고 싶은 대로 자라는 이 녀석을 더 이상 누군가의 규정에 맞추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농담처럼 허리까지 기를 거야 하면서 시작했지만, 기르면 기를수록 이렇게 긴 머리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머리를 기르면서 페미니즘을 접하고 '맨박스'가 무엇인지 깨달으면서 계속해서 내 머리를 짧게 유지시키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고 바로 그것이 '맨박스' 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자신이 이것을 부수지 못하면서 성평등을 논하는 것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결심의 일부로 화장을 배우고 치마를 사서 입기 시작했다.


내 머리를 가만히 놓아두지 못하는 사람들


머리를 5,6개월 정도 자르지 않자 약간은 제멋대로인 상태로 머리를 덮기 시작했고 슬슬 언제 자르냐고 묻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질문은 나에게 몹시 무례하게 들렸다. 그렇지만 또 누군가에겐 '남성' 이라는 정체성과 '긴 머리' 라는 스타일이 양립할 수 없음을 알기에 매번 웃어넘겼다. "허리까지 기를건데??"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대답하기도 했다. 나의 완강한 태도에 더러는 “짧은 게 더 예뻐”라는 말을 덧붙인다. 혹은 머리 긴 남자 별로라는 강요 반 걱정 반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나는 절대 저렇게 못 길러 귀찮아” 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한다. 그냥 자라는 머리를 가만히 놔뒀을 뿐인데 그러니까, 틀에 맞춰서 자르지 않는 쪽을 사람들은 더 이상하게 생각한다. 가끔은 조롱거리도 된다. “계속 기르면 (스타)처럼 된다”는 농담을 한다. 돌아보면 작은 말들인데, 내 자존감을 깎아내는 말들이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굳이 그렇게 이야기해야 했을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과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그래서 머리는 기르면 어때?


당연히 머리를 기르는 일은 쉽지 않다.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모두 그렇다. 짧은 머리의 그 시원함과 물에 담갔다가 꺼내면 마르는 편리함을 거부하는 일은 정말이지 어렵다. 머리카락이 길면 머리를 감는 일에 삶의 패턴을 맞추게 된다. 자주 감지 않게 된다. 자주 나가지도 않게 된다. 아침에 씻을 자신이 없으면 머리를 꼭 감고 잔다. 샴푸도 꽤 많이 든다. 거기다 나는 밝은 탈색모라서 트리트먼트도 물론이다. 아무리 빨리 씻고 말려도 30분은 넘게 걸린다. 미용실에 자주 안 간다. 아마 2,3주마다 미용실에서 바리깡을 머리에 대는 그런 삶을 안다면 대한민국에서는 남성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 익숙한 리듬을 벗어나는 일은 한편 걱정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들과 짧은 머리 스타일로 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탈색을 좋아한다. 한번 색깔을 빼 놓으면, 언제든 내가 원하는 색으로 입힐 수 있으니까. 탈색한 상태의 머리를 놓아두고 계속 머리를 기르면서 걱정이 되긴 했다. 매번 트리트먼트를 해 주어야 하고 머리도 잘 마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고통을 감수할 만큼 내 머리카락을 사랑했다. 그러면 어쩌겠어 더 기르는 거지 뭐~


행복한 순간들


처음 머리를 묶을 수 있을 때를 기억한다. 6개월쯤 되었을 때 비로소 머리를 묶을 수 있었다. 이전까지 애매해서 매번 펄럭거리던 머리를 싹 묶을 때의 그 짜릿함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일은 언제 어딜 가든 머리끈을 챙기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렇게 묶을 길이가 되면, 밥을 먹을 때, 세수를 할 때, 격렬한 운동을 할 때 머리를 묶지 않으면 정말 귀찮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처음으로 어깨에 닿을 때의 뿌듯함을 기억한다. 샤워하면서 처음 느껴지는 감촉에 놀랐다. 어깨를 간질이는 머리카락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2년간의 시간이 머리 끝에서 느껴졌다.

보라색에 푹 빠졌다


마치며


머리를 기르는 시간 동안의 나는 불안했다. 단지 머리카락을 기르는 일 만으로도 이렇게 불안을 겪어야 한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 어떤 때보다 많은 참견을 들었고 자존감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을 들어야 했다. 어쩌면 그것들이 계속 머리를 기를 수 있는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그런 억압은 나 혼자 맨박스와 여성혐오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하는 예비군 훈련에 다녀왔다. 나처럼 긴 머리를 한 사람은 전무했다. 약 4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었는데, 검은색의 투블럭 스타일이 90%였다. 마치 수백 명의 사람들이 전역한 이후로 정확히 전역할 때의 머리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에 덧붙여서 생각나는 아빠가 했던 말. "군대 갔다 온 뒤로는 쭉 이 길이였던 것 같은데?" 그렇다.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기괴하고 무서운 장면이었다.


머리를 잔뜩 기르고 유럽을 여행하던 도중 호스텔 주방에서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떨었고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너 같은 스타일로 머리를 기르는 남자는 없어.", "왜일까?", "여자같이 보여서?", "난 그걸 깨려고 기르는 중이야", "완전 지지해". 짧은 여행이지만 나의 관찰은 여성혐오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머리카락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성혐오와 맨박스의 가장 큰 예라고 생각한다. 여성을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나는 틈만 나면 친구들에게 왜 안길러? 머리카락을 기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살짝살짝 물어본다. 어느새 취업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나이가 된 나는 오히려 20살 때보다 사회의 억압이 더 거세다는 사실을 느낀다. "취업하려면 단정하게 잘라야지~" 아직도 수많은 기업에서는 '단정한(?)' 두발상태와 복장을 요구한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직업군에도 말이다. 그리고 성별에 따라 그 억압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도 명백하다. 나는 이것이 성별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고 매우 성평등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머리를 기르거나 자르고 염색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이런 외모에 대한 문제의식은 최근 '탈코르셋'과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진정으로 변화를 바란다면 '탈코르셋'을 조롱하는 사람들 쪽에 서지 말고 당신부터 머리를 길러 보라. 


요즘은 찰랑거리는 내 머리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짧을 때 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묶을 수 있고 고데기로 새로운 모양을 낼 수도 있다. 내 머리의 길이를 유지해야 된다는 압박감을 더 이상 느끼지 않는다. 내 몸이 온전히 내 것이라는 감각은 정말 행복한 감각이다. 새로운 스타일을 원하는, 매번 다가오는 미용실 방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남성이라면 꾹 참고 머리를 길러 보기를 권한다. 기르는 과정은 당신이 그저 '귀찮은' 일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성별 고정관념과 폭력적인 자신의 언어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


그러니까 다 같이 머리 기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