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주의 vs 자본주의
올해부터 일상에서 변화를 시도한 일은 바로 '일회용품과 플라스틱을 몰라내는 일' 이었다. 특히 플라스틱에 담긴 물을 사마시면서 매번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나는 대안을 발견했다. 바로 '브리타 정수기'라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브리타 광고 아님ㅋㅋ) 브리타는 가정용 휴대용 정수기로 수돗물을 정수해서 바로 마실 수 있다. 외국에서는 이미 흔하게 쓰는 듯 했다. 그린피스에 아주 조금 후원하고 있지만 그 돈 그린피스 줘서 뭐하나 나는 매일 페트병, 일회용품 사다 버리고 있는데. 습관을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은 플라스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계속해서 무엇을 '소비'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최근 활동하고 있는 쓰레기덕질 커뮤니티에서 이 정보를 접한 나는 마침내 페트병을 잔뜩 사다가 물만 먹고 내다 버리는 일상을 그만두기로 마음 먹었다. 동거인과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다행스럽게도 브리타를 써 보기로 결정했다. 비용을 계산해본 결과 페트병으로 물을 사먹을 때보다 1.2~1.5배 정도 돈이 더 드는 것으로 계산되었고 돈을 더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동거인도 페트병 매번 쌓아놓는 것도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보태자면, 마실 물을 택배 아저씨께 부탁하는 일도 이게 건강한 구조가 맞을까 의심스러웠다. 우리나라의 왜곡된 택배시장의 구조에 기여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리타가 왔다.
신세계였다. 물을 받았고, 정수가 됐다. 마신다. 끝? ㅋㅋㅋㅋ
1. 처음에 브리타를 쓸 때는 물이 졸졸졸 정수되는 데 좀 기다려야 하는 데 적응을 못해서 바로 마실 수 없는 귀 찮음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나도 모르게 물이 비어있을 때마다 브리타를 채워놓게 습관을 바꿨다. 생각보다 우리는 적응을 잘 한다.
2. (당연한 이야기지만)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안 사도 된다. 더 중요한 점은 '집에 페트에 담긴 생수를 쌓아둘 공간' 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한 평이 아쉬운 자취생에겐 아주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마신 생수를 쌓아 둘 곳도 필요 없으니 일석이조다.
3. 집 밖에서 페트에 담긴 음료를 사먹는 일이 줄었다. 음료수가 먹고 싶다면 집에서 바로 정수해서 뭔가 타먹을 수 있는데, 굳이 페트병을 새로 사서 버리면서까지 마실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급하면 어쩔 수 없다)
* 추가) 브리타 필터는 호불호 혹은 필터 - 건강상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고민을 밖에서 물을 사 먹는 고민으로도 이어졌다. 이렇게 집에서 기껏 정수해서 먹으면 뭐하나 나가서 덥다고 음료수 사들어 버리면 말짱 도루묵인데 말이다. 그래서 텀블러를 사기로 한다.
1. 나갈 때 가방을 챙겨 다닌다. 텀블러를 들고다녀야 되니까 말이다. 좀 귀찮다.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2,3주 정도? 그렇지만, 이제 외출할 때 약간의 묵직함이 없으면 허전하다.
2.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 일회용 컵에 주는지 머그잔에 주는 지 묻고 일회용 컵에 준다고 하면 텀블러를 자신있게 꺼내든다. 작지만 요즘은 여기저기서 몇백원씩 할인도 해준다.
텀블러를 잘 들고다니면 거창한 습관이고 뭐고 필요없고 그냥 기분이 좋다. 평소같으면 일회용 컵을 하나 사용해야 할 상황에 텀블러를 척 하고 꺼내들 수 있을 때의 그 당당함! 뿌듯함! 이제 내 컵을 다니고 다니는 것이 익숙해진 나는 내친 김에 빨대도 내 빨대를 써 보기로 도전했다.
아쉽게도 없다. 아직 스테인리스 빨대를 잘 들고다닐 방법을 못 찾았다. 위생적으로 들고다니려면 케이스가 필요할 것 같다. 나도 빨대가 필요한 음료를 자주 마시는 편이 아닌데, 엊그제 프라푸치노를 주문했다가 내 빨대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일회용 빨대를 사용했다. 이럴 거면 왜 산거야!!!!
내 생각에는 스테인리스 빨대를 도입해야 하는 주체는 개인보다는 기업들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일회용 빨대 무상 비치를 중단하는 것까지 포함이다. (혹시 예쁜 빨대 케이스 아시는 분은 공유해 주세요...ㅋㅋㅋ)
이제 부제목인 환경주의 vs 자본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왔다. 텀블러 이야기 하면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집에 텀블러가 넘쳐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나는 어딜 잘 안 나다녀서 그런지(?) 다행히 들고 다닐 수 있는 텀블러는 하나도 없었다. (컵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친구들은 두 세개 있음) 그래서 더 양심의 가책 없이 스탠리 텀블러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브리타 몸체와 필터도 새로 사야 하는 것이고 스테인리스 빨대 또한 사야 한다. 결국 기존의 라이프 스타일인 일회용품에 사람들을 길들여 놓은 것도 '자본'이고 환경주의와 같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것도 '자본'이다. 텀블러를 사는 것이 환경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어디선가 받은 사은품으로 텀블러를 10개쯤 가지고 있다면 이쯤 되면 일회용품을 쓰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기분이 들 것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그 사이에서 누가 돈을 버느냐는 것이다. 환경친화적, 지속가능성을 표방하는 것 또한 소비자본주의의 또다른 패션이 아닐까 두렵다. 기업들은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고 그 죄책감을 비즈니스에 이용한다. 우리의 조그만 노력들이 그저 새로운 자본에게 돈을 쥐여주는 꼴밖에 되는 게 아닐까? (개인의 실천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같은 개인 말고 과연 정말로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날카롭게 돌아봐야 할 때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모두가 이런 고민을 가끔씩 떠안으면 좋겠다. 습관을 바꾸는 일은 힘들지만 조금만 신경쓰면 불필요한 쓰레기를 덜 만들 수 있는 것은 확실하다. 요즘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참 오만하게 들린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뿐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도 내가 변하면 내 주변도 변할 것이라고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