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별 모스트5와 심리의 상관관계
삶과 죽음의 순환은 계속된다. 우리는 살 것이고, 저들은 죽을 것이다. - 나서스
어릴 때부터 경쟁이 너무나도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게임은 현실의 조그만 모형이다. 모형 세계에서는 현실처럼 치열한 경쟁과 명확히 집계되는 데이터, 뚜렷한 승패가 존재한다. 우리에게 가상 세계에서의 승리는 현실 못지않은 즐거움을 준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부터 그런 경쟁심리와 섬세한 컨트롤, 다양한 가능성, 변화무쌍한 전개를 가져다준 게임이 있다. 바로 '리그오브 레전드'다. 게임을 시작할 때, 나는 챔피언을 고르는 데 엄청나게 애를 먹었다. 나는 무언가를 고르는 데 아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었고 게임에는 100개가 넘는 챔피언이 있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나는 탑/정글/(서폿) 포지션에 정착했다. 나의 포지션이 정해지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보통 친구들과 팀 게임을 하면 사람들이 탑이라는 포지션을 즐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글 또한 친구들이 약간 기피하지만 동시에 각 라인의 유저들과 협업해야 하는 포지션이라는 매력이 있었다. 서폿은 내가 실력이 제일 부족한 경우에 했다. 게임을 하면서 오히려 나는 게임 속에서의 나의 자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5:5라는 팀 게임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나의 개인적 체험으로 나는 리그오브레전드에서 챔피언과 라인 선택에서 개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가설에 기반하여 fow.kr에 누적된 나의 시즌 3에서부터 시즌8까지의 데이터의 토대로 나의 성격의 변화를 돌아본다.
* 설명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게임에는 일반게임과 랭크 게임이 있고, 랭크 게임에서는 승패에 따라 등급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리고 그 등급은 몇 개월 단위의 시즌으로 나뉜다.
이제 막 롤에 입문했을 때다. 모스트 1은 시도해 본 몇 안 되는 챔프 중, 잭스라는 우산을 돌리면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며 기절시킬 수 있는 챔피언이 있는데, 처음에 너무 못했는데 오기가 생겨서 계속했다. (승률과 kda가 부끄럽다...) 처음 롤을 접했을 때는, 친구들에 비해 내가 라인전 실력이 무척이나 부족해서 주로 정글을 했다. 정글이 무언가 계속 라인의 cs를 챙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또, cc만 적당히 걸어주면 한타가 어느 정도는 성립이 되어서 많이 했던 것 같다. (자르반의 챔프 성능이 정말 좋았다) 이때 자크가 새로 나왔다. 나는 정글, 탑에 설 수 있고 점프를 통해서 갱, 이동이 용이하며 심지어 죽어도 한 번 살아날 수 있는 자크라는 챔프에 풍덩 빠졌다.
그 기세를 이어서 다음 시즌에는 랭크에서 정말로 자크만 했다. (나머지 네 챔프는 그냥 어쩔 수 없이 골랐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자크에 푹 빠진 이유는 바로 '살아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무슨 일을 할 때 제일 처음에 서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두려움을 계속 타는 편인데, 자크는 거기에 딱 맞았다. (사실 한타는 후진입이 좋긴 하지만...) 마음 놓고 상대 전장에 뛰어들어서 난동을 피우면 우리 팀이 하나씩 적을 처치해나가는 그림이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다. 승률과 kda도 나쁘지 않았다. (뿌듯) 거기다 젤리가 울퉁불퉁한 것이 정말 귀엽다!!!! 심지어 스킬을 쓰면 젤리가 튀어서 먹으면 체력이 찬다구!!! (잘 안죽음) 아 까먹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나는 상대를 공격하는 편 보다, 상대의 공격을 몽땅 맞아내는 편을 좋아한다. 축구할 때도 수비수를 맡고 게임에서도 탱커 포지션을 선호한다. 이것에 대해선 아래에서 더 고민해 보자.
슬프게도 입대를 해서 손이 굳은 시즌이다. 팀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서폿을 하곤 했는데, 그마저도 승률이 별로다. 곧잘 하던 자크도 저렇게 못하니 말 다했다. 이렐리아의 등장이 눈에 띈다. 당시 친구가 하던 (패치 전)이렐리아의 호쾌한 움직임에 반했었고 조금씩 연습하던 차였다.
이례적인 시즌이다. 모스트를 차지하던 자크보다 이렐리아를 훨씬 더 많이 한 시즌. 군에 다녀와서 전역을 하고 나서의 내 세계관의 변화를 알 수 있다. 그전엔 나는 그냥 두드려 맞는 사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와 나 밖의 사람이 있다면, 그가 나를 아무리 공격해도 내가 두들겨 맞으면 언젠가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그 또한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었고,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꿔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조그만 생각의 싹이 자라 이렐리아라는 탑에서의 딜탱을 선택하게 했고 (나는 주로 탱을 갔다 ;;;) 생각보다 손에 잘 붙어서 승률이 나쁘지 않았다.
이 시즌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성적이 좋았던 시즌인데, 기록상으로는 생각보다 좋지는 않다. 이 시즌에는 매번 실버에만 머물던 내 실력을 개선해보고자 진지하게 임했고 자유랭크에서 혼자 골드로 승급했다. 그마저도 서폿 벨코즈라는 특이한 포지션으로 승급한 것은 비밀.
시즌6에 잠시 모습을 비추었던 트런들이 갑작스레 모스트1로 올라갔다. 나의 이렐리아 실력이 정체되면서 딜탱에 대한 욕망이 많이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세상을 굉장히 대결적으로 보기 시작했던 때와 성격이 또 달라졌다. 아무래도 공격적인 역할은 잘 안 맞는다. 수비적인 챔프를 찾으면서 동시에 스플릿, 한타 기여를 생각하다 보니 트런들을 하게 됐다. 트런들도 자크처럼 튼튼해서 궁극기를 쓰면 잘 죽지 않는데 그것이 매력이었다. 나는 내 피지컬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하다. 그래서 항상 전투의 앞선에서 맞아주는 역할을 하는 편을 선호한다. 라인은 여전히 대부분 탑 라인을 서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망해도 다른 라인에 영향력이 비교적 덜하고 잘 크면 나는 주로 탱커니까 한타 때 꽤 쓸모 있는 역할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픽의 흥미로운 점은 그 시즌에 잘 나간다는 대세 챔프를 따르기보다는 내가 쓰기 쉬운 챔프를 (스킬 쉬운 ;;) 죽 플레이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나의 은근한 고집스러움도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 정글과 자크를 많이 플레이할 때는 내가 전투의 시작을 열어야 하는 이니시에이터라고 생각했다. 당시 자의식이 과잉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원하는 역할은 변해서 지금은 탑의 딜탱으로 정착했다. 예전보다 피지컬. 그러니까 기본적인 게임 실력에 좀 더 신경을 쓰고 - 라인전에서 승리하고 - 팀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팀이 단합이 잘되고 내가 재미있어도 게임이 지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이기기 위해서 고집을 버리고 '꿀챔프'를 연습해 보기도 한다. 나는 나만 엄청 두들겨 맞고 우리 팀이 이겼을 때 꽤 희열을 느끼곤 하는데, 그곳에서 자기희생의 욕망을 발견한다.
게임수를 보면 꽤나 많이 한 편이지만 여전히 자유랭크 한 시즌 빼고는 실버에서 헤매고 있다. 이것은 내가 게임을 할 때의 자세에서 알 수 있었다. 랭크가 올라가는 사람을 관찰하면 그들은 '이기기 위한 전략'에 아주 집중하고 실행하는 데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승패보다 나의 즐거움, 혹은 팀의 단합이 우선이었고 결과는 항상 뒷전이었다. 그리고 선택하는 챔프도 내가 혼자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끝낼 수 있는 챔프보다는 팀원의 공격력에 기대는 수비적인 챔프를 한다. 새로운 시즌에는 그런 역할에 갇히지 말고 미드나 원딜 같은 포지션도 맡을 수 있는 유연함을 가져야지.
혼자 즐기는 게임보다는 남들과 함께하는 게임을 하는 나를 보면서 연결되어 있음에 대한 욕망을 발견하고 경쟁을 통해서 승리하고 싶어 하는 욕망도 발견한다. 두려움이 많은 내가 타인 앞에서 이렇게 솔직해질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될까. 중독되어 승리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게임은 정말 좋은 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