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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 Jun 06. 2019

아픔이 길이 되려면 / 김승섭 지음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이 책이 좋다는 이야기를 두 번 넘게 들었다. 보통 지인에게 두 번 이상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뭐든지 무조건 해 봐야 한다. 빌리기보다는 꼭 사서 읽고 싶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중고로 구하고야 말았다. 사서 진득이 읽어야지 하는 바램은 책의 서문을 읽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지고 3일 만에 휘리릭 다 읽어버렸다. 꼭 이렇게 사고 싶은 책은 사서 후다닥 읽어버리고 빌리고 싶은 책은 느릿느릿 다 못 읽어서 항상 연체료를 내고 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저는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입니다. / 들어가며


책의 첫 페이지의 이 문을 읽자마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모든 책임의 개인에게 지우는 요즘 세상에서 이런 학문이 있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했기 때문이다.


관점의 문제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몸과 건강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을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고민이지요. / 들어가며


나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내 탓을 한다. 물론 내 실수로 발생한 일일지라도 그것이 온전히 내 책임일까? 안전장구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업장에서 큰 사고를 당한 것이 기계를 잘못 조작한 내 실수일까? 이 책에서는 그런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통계를 이용하고 확률을 계산한다. 언어를 가지지 못했던 이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건강을 의학적으로 체크한다.


불평등한 여름, 국가의 역할을 묻다

지난여름 정말 어마어마하게 더웠다. 날씨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취약한 계층은 집계된 기사는 못 보았지만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시카고 폭염의 사례는 내가 고민하던 바로 그 지점을 파헤친 연구였다.


어떤 사람이 폭염에 취약한가에서 어떤 공동체가 폭염에 취약한가 라고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폭염이라는 자연재해의 특징은 공동체가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렸다. 에어컨은 물론이거니와 마을에 사는 서로가 온열질환을 앓지 않게 돕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재난의 원인을 알아야 하는 이유

폭염으로 인한 사망을 자연재해로, 우연히 발생한 사고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적인 원인을 찾고 그에 기반을 두고 대응 전략을 마련했던 행정기관과 그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시민들이 거둔 성과였습니다.

실제로 시카고에서는 기록적인 폭염 사태 이후 사회적인 해결법을 도입했고 폭염 사망자 수가 크게 줄었다.  우리의 건강은 개인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의 책임이기도 하다.


거대 자본에 맞서는 연구를 한다는 것

앞선 내용들로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언어가 없는 약자들은 쉽게 건강을 대가로 일하고 자본은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익만큼 이윤을 창출한다. 미국에서 먼저 시작한 그가 연구하는 분야의 연구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불의함을 보고 뛰어든다기보다는 학자로서의 진실을 말한다는 뜻이 컸다.


발암물질 석면 공장,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동남아로

이 부분도 좀 충격적이었다. 일본에서 석면 공장을 한창 운영한 뒤 규제가 생기자 한국으로 왔고 이 공장은 한국에서 규제가 생기자 다시 동남아로 이전했다. 자본이란, 산업이란 결국 가장 약한 이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2019 퀴어문화축제

제도가 존재를 부정할 때, 몸은 아프다

내가 저자인 김승섭 교수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그의 성소수자 건강 연구 때문이었다. 다들 짐작은 하지만 정말 성소수자가 아프다는 것을 의사의 언어로, 학문의 언어로 설명한다는 것은 우리의 추측과는 다른 무게다. 미국에서 동성 결혼을 허용한 이후의 성소수자들의 건강을 조사한 연구를 인용한다. 아직 우리 사회의 논의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만에서는 이미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상황에서 여전히 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출생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식의 논의밖에 들리지 않아 안타깝다.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한 문장이었다. 그리고 바로 든 생각은 휠체어와 유모차의 이동권에 대한 고민이었다. 유럽에 여행 갔을 때 대중교통에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정말 잘 되어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바르셀로나에서 버스에 유모차가 4대 휠체어 1대 그리고 그 사이사이 비좁은 데 사람들이 가득해 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불편하거나 이상한 기색을 내비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지금 약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사회는 쉽게 승자가 되기를 요구한다. 나의 이익을 좇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비용이라고 한다.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쏟아지는 비를 멈출 수 없다면 함께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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