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영 지음 / 아르테
혼자 살다 보면 항상 이사에 대해 걱정하게 된다. 이사 하는 건 1년이나 2년마다 한번 씩 다가오지만 이사를 생각하지 않고 물건들을 계속 집에 들이다 보면 정말 이사할 때 큰 고생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종이로 된 책을 들이는 데는 신중해진다. 내가 책을 너무 좋아해서 들어오는 책은 잘 나가질 않기 때문이다. 제목 그대로의 기분을 느낄 때 쯤 이 책이 들어오게 되었다.
사람은 본래 나약하다. 그래서 아프기 쉽다. 사람은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언제든지 아플 수 있다. 누구든 언제든 병을 얻을 수 있다.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자 우리의 한계다 -28p
제목이 힐링 종류일 것 같은 책을 보면 언뜻 거부감이 든다. 실질적인 해결책이 없을 것 같은 걱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치만 책 한권으로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있다면 그게 더 우스운 일이지. 하는 마음에 책을 펴들었다. 책은 두껍지 않다.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에 200페이지 정도. 행키가 대체 뭔가 했더니 지은이의 별명이었다. 지은이는 정신과 전문의로 본인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과를 택했다고 한다. 실제로 의대 공부와 잘 맞지 않아 학교도 오래 다니고 전문의도 아주 늦게 얻었다고 한다. 그런 자신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고자 직접 상담버스를 만들어 전국으로 돌아다닌 경험을 실었다.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괜찮은 일이지만, 우리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노력도 꽤 괜찮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오늘'을 살아가려고 한다. -29p
저자의 이력은 화려하다. 많은 TV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의사라는 것이 워낙에 고소득 직종이고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다 보니 이렇게 수입을 포기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인기가 많나 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지은이의 생각은 정확히 맞았다. 정신병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문턱을 낮추는 일, 그것이 지은이가 처음 상담버스를 만들 때 가진 미션이었다.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시작한 프로젝트라고 예상했다면 전혀 아니다. 행키(지은이)는 정말 버스도 자신의 손으로 구입했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인테리어도 직접 했다. 처음에 거리로 그냥 나갔을 때는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행키는 다른 사람의 마음건강을 돕기 위해서 나왔는데 본인의 심리가 더 안좋아졌다고도 고백한다. 하지만 센터와 시의 지원을 받아서 뭔가 '공식' 상담 같은 느낌이 나고 TV출연을 하게 되지 전국적으로 응원이 엄청나게 쏟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행키는 그것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자신을 넘는 책임감 때문에 행키는 번아웃을 경험하고 만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오래 일하고 마음이 지치면 제대로 일할 수 없다. 특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진단하는 정신과 의사는 더욱 그렇다. 행키는 결국 자신의 손 만으로는 절대 이 많은 사람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깨닫는다.
이 글을 읽고 누군가는 또 머릿속으로 '돈 밝히는' 의사들과 그렇지 않은 의사들을 구분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돈,돈,돈 하는 사람이 자신은 아닌지 한번 점검해봤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과정이 따뜻해졌던 이유는 이런 상황에서의 행키의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남탓을 하면서 그만할 수도, 아니면 자신의 능력 탓을 하면서 부정적인 고리로 쉽게 빠질 수도 있지만 행키는 그 사이를 적절히 돌파해 낸다. 그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 공감이 안되는 '힐링' 컨텐츠기는 하지만 정신과 전문의 답게 자신의 상태를 적절히 진단해 내고 일종의 '정답'을 실천한다. 사실 인생이 힘들어지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은 몇 가지 없다. 실천하기 힘들 뿐이지 ㅋㅋ
상상해본다. -(중략)- 병원과 정신건강복지센터 사이에 있는 그곳을. 사실 이런 곳은 나라에서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203p
지은이는 가족 문제로 인해 지금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상태다. 그렇지만 상담버스는 주말에 계속 활동한다고. 나도 누군가의 못남을 지적하기보다는 서로가 가진 자원을 인정하고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그리고 나의 다음 고민은 직전에 읽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의 메시지와 내 정신건강을 지키는 일의 중간선은 어디일까다. 심지어 정신과 의사인 지은이도 '쏟아지는 비를 멈출 수 없다면 함께 맞다'가 번아웃이 되고 말았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