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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 May 17. 2019

카페의 그 신성함에 대하여

커피 향을 맡아야 몸을 움직이게 되어버린 이야기

대학을 다닐 땐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꽤 많았다. 당장 수업을 듣는 강의실부터 24시간 열려 있는 도서관, 그리고 동아리방까지. 카페에서 무언가에 집중할 일이 잘 없었다. 학생 지갑으로 카페에 매일 가기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졸업 하고 나서는 왜인지 막막했다. 집 밖에서 할 일을 하면서 잠시 몸을 기댈 공간은 카페 말고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아침에 살짝 잠이 덜 깬 머리, 아직 꽉 차지 않은 카페 구석구석에서 벌써 일을 시작한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커피 향을 한껏 들이키면 머릿속에 부품이 제 자리를 찾은 듯 서서히 집중이 되기 시작한다. 다른 이 들이 무엇을 하는지 다시 신경이 쓰일 때쯤 되면 점심을 먹을 시간. 나처럼 컴퓨터를 켜서 무언가 열심히 작성하는 이들. 신문과 자료를 펴 놓고 스터디를 하는 사람들. 계약 내용을 조곤조곤 설명해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사람들. 혼자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 저마다의 일에 집중하고 있는 분위기는 나도 모르게 내 일에 집중하게 만든다.


지난 2월 회사를 그만두고부터 출근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매일 9시면 찾아오던 출근이 사라지니 정말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카페로 혹은 학교로 아니면 그냥 구글 행아웃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찾아왔다. 게임도 실컷 하고 잘 가지 못했던 미술관도 갔다. 친구들도 만났다. 그것도 2월과 3월까지. 그리고 4월쯤이면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여전히 무직인 상태로 퇴직금으로 산 맥북 한 대 꼭 껴앉고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이전의 실패를 '공부의 깊이'라고 판단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면접에서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설명할 깊이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론 정말 나가기 귀찮은 날에는 집에서도 일을 하곤 했지만 집은 기본적으로 나에게 쉼의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문제인 점은 '혼자'라는 점이었다. 혼자인 나는 정말 쉽게 나태해졌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시간이 늦든 일찍이든 카페로 나섰다.


집 근처의 24시 카페를 많이 찾아냈다. 쉬는 통에 수면 스케줄이 엉망이 된 탓이다. 다행히도 집 근처에도 나 같이 다양한 스케줄의 사람들이 많이 사는지 24시 카페가 많았다. 24시간 음식점도 많았다. 정 급하면 편의점 도시락도 있다. 카페에 가면 해 뜨기 직전까지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동료들이 있다. 몸도 마음도 건강에서 조금 멀어진 나를 다잡는 데 그들이 큰 도움을 주었다.


텀블러를 가져가면 보통 300원을 할인해준다 :D

최근에는 아침에 일어나는 스케줄을 선호하게 되었다. 항상 못 일어나곤 했는데, 일찍 일어날 때의 특별한 느낌이 있다. 출근을 위해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아침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는 사람들이라는 묘한 연대감이 느껴진다. 카페에서 마감을, 과제를, 문제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카페에 거의 매일 가다가 보니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졸업한 나에게 와닿지 않는 중간고사 기간이 카페에 불어닥쳤고 낮부터 새벽까지 카페에 사람이 몽땅 가득 차있는 진기한 장면을 맞닥뜨렸다. 그리고 주말 오후에는 카페 5군데를 돌아도 자리가 없는 일도 있었다. (덕분에 미리 움직이게 됐다) 이제 카페에서 일하다 배가 고프면 슬쩍 밥 먹고 돌아올 만큼 얼굴이 두꺼워지기도 했다. 월요일 아침에는 카페에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는 사실도 관찰했다. 그리고 스타벅스엔 오후 1시를 딱 넘기면 자리가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정해진 사무실 대신 카페로 출근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나는 카페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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