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와 욕망
언젠가부터 마음이 지칠 때면 여행하고픈 욕구가 엄청 생긴다. 싼 비행기 값과 현지 물가를 생각하며 동남아 여행을 떠나는 일은 내 주변에서는 대단한 일은 아니다. 마침 나처럼 떠나고 싶은 친구와 일정이 맞았고 3박 5일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은 서로의 욕망을 맞춰나가는 일이기도 했는데, 서로가 한정된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쉬고 싶은지 아니면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싶은지를 정해야 했다. 우리는 우리 지갑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적당히 괜찮은 호텔에 묵으면서 해변과 가깝고 또 자체 수영장도 있었으면 했다. 해양 액티비티 같은 것은 각자 알아서 하고 스케줄 맞으면 같이 하는 식으로 하기로 했다.
처음에 정보를 모으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꼭 제주도 여행 같이 인터넷에는 보라카이 현지 지도부터 맛집 정보까지 한국어 정보가 빼곡했다. 유튜브에도 여행정보 영상이 정말 많다. 왜 한국인들이 이렇게 많이 갈까? 이런 가격은 어떻게 가능한 것이지? 한국 여행사들이 현지에서 어떻게 작동하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여행 정보를 모으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질문들을 마음속에 꾹 품고 여행 준비를 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점점 더 개인의 욕망의 허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항공 산업이 발달해 보통 사람도 쉽게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고 정보 산업은 그런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정보를 폭발적으로 생산한다. 한정된 예산으로 한국에서 같은 크기의 욕망을 채울 수 없는 나와 친구는 자연스레 가격이 싼 동남아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지고 물리적으로 단절되는 것은 덤이다. 사실 지금과 같은 여행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어서 여태까지 한 번도 추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휴양에 치중한 여행은 필연적으로 착취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비행기를 탈 때 생성되는 이산화탄소가 어마어마하고 이것이 내가 휴양에서 얻는 만족감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취업준비를 하면서 슬프게도 완전히 체제를 벗어나서 살 수 없는 나는 그저 욕망이 수시로 넘치는 한 사람의 개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앞서 두 가지 비판적인 근거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첫 번째에 대한 반론은 비록 현지에서 착취적인 형태의 서비스들이 존재할지라도 내가 그것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고 이미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시장 가격이 정해진 것에 내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 자동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밖에 없다. 내가 만드는 이산화탄소는 실제로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 다른 수많은 기업들에 비해 티끌밖에 안 되는 양이라고 타협했다. 또 출발 전에 탄소배출권 판매 시장(?)이라는 것이 있고 여기서 국가, 기업이 탄소배출권을 구입하며 미국에서는 개인도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비록 내가 이렇게 이산화탄소를 많이 만들었지만 앞으로 점점 더 적게 배출하는 산업에 투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보라카이에서 자유여행은 8할이 흥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어떤 서비스나 재화를 구매하려고 하면 현지인들은 가격을 제시하고 몇 번의 줄다리기 끝에 낙찰 가격이 정해진다. 보라카이에서 가격이라는 것은 포스트잇처럼 붙였다 뗐다 하는 것이라서 수많은 여행 후기들이 이야기하듯이 처음 가격의 1/4까지도 깎아서 가격이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흥정하는 행위가 착취적인 것이 아닌지 쉽게 결정하지 못해서 바득바득 깎지 못하기도 했는데, 중간에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서비스 같은 경우는 실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들이 있고 그들이 유통업자(흥정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기본 가격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모두 유통업자들의 마진 그러니까 그들의 일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기본 가격보다 오버페이 한다고 해서 그들의 평균 시급이 올라갈까? 여행객들이 한 명도 흥정을 하지 않는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이 자신의 일당을 싸게 책정하는 것을 내가 바꿀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 같다.
내 욕망에 충실하려고 나의 즐거운 기분을 유지하려고 정말이지 굳게 결심하고 갔지만 몇몇 상황들은 정말 쉽게 넘기기 힘들었다. 첫 번째 참을 수 없었던 장면은 같은 한국인 관광객의 추태였다. 30대 초반 남성 무리로 보이는 이들은 한국인에게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에게 말을 걸면서 선을 넘고 만다. "필리핀 와이프, 하우 올드 아유?" 같은 소리를 연달아 해댔는데, 화가 나서 자세한 내용도 잘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한국인 종업원에게 같은 농담을 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밥을 거의 다 먹은 터라 후다닥 레스토랑에서 뛰쳐나왔다. 두 번째 놀라운 일은 여행객의 성별에 따라 호객꾼들의 호객 멘트가 바뀐다는 것이다. 여성인 그룹과 함께 걷고 있으면 그들은 평범한 멘트를 던진다. 능숙한 한국어 억양으로 "여기 마싸지 엄청잘해 한번 들렀다 가~", "스쿠버다이빙 안 해요?"와 같은 멘트를 던진다. 하지만 남성으로 패싱되는 그룹이 걷고 있는 순간 달라진다. "여자 마사지 잘해~"와 같은 멘트가 나온다. 여행 기간의 절반은 치마를, 절반은 반바지를 입고 다닌 터라 어처구니없게도 치마를 입은 날에는 "여자" 수식어가 붙지 않았다. 오히려 "Are you ladyboy?" 혹은 "누나? 아니 형님?" 혼자 헷갈려하는 사람도 있고 "이쁘다~" 같은 단어가 들리기 시작한다. 남성 그룹에게만 여성을 붙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자가 맛사지 해주냐고 그들에게 얼마나 물어댔기 때문일 테다. 세 번째는 우연히 들어간 백인 감성의 바에서였다. 밤에 걷기에 약간 지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 아무 바나 들어갔는데, 밴드의 보컬도 백인이었고 대부분의 손님도 백인이었다. 특히 중년 백인 남성 + 젊은 동양인 여성 조합이 많았는데, 혼자 있는 백인 남자에도 능숙하게 접근하는 현지인 여성들이 많이 보였다. 그 공간에는 도무지 오래 있을 수 없었다. 맥주를 빨리 삼키고 또다시 후다닥 뛰쳐나오고 말았다.
흥정의 과정이 어찌 되었든 액티비티는 신났다. 바다는 너무 예뻤고 물고기도 가득했다. 물속을 걷는 경험은 색달랐고 배는 타도 타도 질리질 않았다. 액티비티 사이사이, 명단과 배에서 배로 넘어가는 과정들은 수기로 구두로 유연하게 굴러갔는데, 디지털에 의존하고 있는 나로서는 경외감이 드는 장면이었다.
정말 아쉬운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교통이었다. 보라카이 섬에 넘쳐나는 여행객에 비해 도로는 모두 1차선이었고 여전히 공사 중인 도로, 돌무더기가 가득한 도로, 공사 예정이라 구멍을 곳곳에 뚫어놓은 도로를 트라이시클로(삼토바이ㅋㅋ) 다니는 일은 피곤한 일이었다. 필리핀 치안을 믿기도 좀 그래서 조금이라도 거리가 있으면 트라이시클을 탔다. 관광객이 이렇게나 많은데 현지인들의 집이나 도로부터 기본적인 시설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섬이라니.
자본주의와 식민주의는 여전히 세계에서 작동한다. 그리고 과거 어쩌면 현재도 식민지 일지 모르는 한국의 여행사들의 엄청난 보라카이 관광사업은 식민주의 관점에서 출발했다. 심지어 현지에서 일하는 같은 나라 국민을 착취한다는 기사도 있다. 그 반증이 바로 엄청나게 깨끗한 호텔과 비만 오면 웅덩이가 생기는 흙길의 간극, 현지인의 생활수준일 것이다. 누가 돈을 버는가?
내가 여행을 주저했던 첫 번째 근거는 유효했다. 실제로 우리가 '싸다'라고 표현하는 많은 가격들은 현지인의 노동력이 포함된 가격이고 한국에 비해 낮은 현지인의 시급 덕택에 나의 넉넉지 않은 지갑에도 욕망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욕망은 언제나 경계해야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끝을 모르는 욕망의 결과는 쓰레기 더미로 돌아와 작년처럼 쓰레기 문제로 섬을 잠시 폐장하기도 한다. (그 여파인지 거의 모든 식당에서 종이 빨대를 사용하고, 해변가에서 음주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 열심히 일해서 국내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즐기는 것? 그것 또한 착취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여름철이 되면 꼭 드넓은 모래사장에서 마음껏 뛰놀고 싶은 욕망 자체를 조금씩 줄여 나가는 것?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여행 이야기에 귀를 막고 사는 수밖에 없겠다) 아예 제주도로 이사를 가 버리기?
뾰족한 수가 있다면 누군가 먼저 행동에 옮겼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도 약간 씁쓸하다. 다음번에 동남아를 간다면 한국에 많은 정보에 혹하지 말고 좀 더 자유롭게 직관을 따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정말 신났지만, 다음에 공부해야 할 숙제도 몇 개 받아온 것 같은 여행이었다. 나의 욕망은 어디까지가 정당한 것일까? 그리고 나는 세계를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