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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 Oct 20. 2020

페스코 베지테리언 11개월 차 근황

의외로 잘 버틴다??

지난해 12월. 셀렉테리언과 페스코의 경계를 넘나들던 나는 이제 선을 그을 때가 왔다고 느꼈다. 굳이 고기를 먹을 이유가 없는데 오로지 메뉴 선택의 귀찮음과 사회적인 관계에 의해서 고기 메뉴를 고르는 일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뒤로부터는 고기를 제외한 생선과 그 이하만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인 나로서는 세상을 좀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없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지구를 덜 나빠지게 하기 위한 조그만 노력 중 하나다.


아직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웠던 지난겨울 나는 베지테리언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서 열심히 헬스장을 다녔다. 그리고 2달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무려 700g(!?)의 근육량 증가를 이루면서 올해는 드디어 근육량을 끌어올리는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설렘에 가득 찼다. 그리고 그런 기대는 지난 2월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아주 금방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운동을 전처럼 자유롭게 못하게 되었지만,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되는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나 같은 경우는 고기를 먹는 일을 점차적으로 1,2년간 줄여와서 고기가 급작스럽게 먹고 싶다던지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굳이 꼽자면 치킨집 지날 때 냄새가 참 좋긴 했지만, 튀김을 향한 욕망은 고기가 없는 튀김으로도 충분히 충족되었다. 그리고 코로나 덕분에 외식이 줄어서 배달 혹은 집에서 해 먹는 일이 많아졌고 의외로 배달 메뉴 중에서 고기가 없는 메뉴가 많았다. (샐러드 가게가 많다는 이야기) 특히 집에서 먹는 동안 각종 레시피들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바로 두부버거 !!



레시피는 보이는 대로다.

* 재료 : 두부 1모, 식빵, 양파, 치즈, 와사비, 마요네즈, 설탕, 소금 등등.

* 두부를 적당히 기름에 구워서 다른 재료들과 함께 쌓아서 먹는다!

팁) 식빵은 무를 수도 있어서 에어프라이에 아주 잠깐 구웠다.


두부를 막 찾아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고기를 먹지 않게 된 덕에 두부와 아주 친해졌다. 요즘은 두부 한 모를 그냥 퍼먹거나 이렇게 두부를 재료로 한 요리들과 아주 친해졌다. 두부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역시 단백질이다. 고기를 먹지 않게 되면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이 줄어든다. 제일 힘든 점은, 고기를 먹지 않고 대충 보이는 대로 막 먹었을 때 영양 밸런스가 맞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대충 생각해 보아도 빵이라던지, 떡볶이, 야채 이렇게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특히 나는 몸이 아주 커다래서 단백질을 먹지 않으면 금방 허약해지고 마는데, 아주 극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발견은 채식을 하게 되면 나보다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까다로워한다는 점이다. 나는 고기를 안 먹거나 고기를 먹지 않은 메뉴를 먹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고기를 특히나 먹고 싶어 하는 모임에서 메뉴를 정할 때면 아주 쉽지 않다. 사실 나도 모임을 고깃집에서 주최한 적이 몇 번 있을 정도로 둔감했다. 지난 회사 회식 장소 정하는 일이 아주 까다로웠다. 고기를 먹지 않는 나와 해산물을 잘 못 드시는 팀원 분을 모두 만족시키는 곳은 아주 많지 않았다. (몰래 운영팀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확실히 단언할 수 있는 점은 채식은 계급과 강한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메뉴를 고르고 준비할 시간과 힘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고기가 든 가까운 메뉴에 이끌리게 된다. 건강하게 균형이 잡힌 채식 식단을 유지하는 일은 아주 까다롭다. 아주 도시에 사는 나는 샐러드를 배달해서 먹으면 그만이지만, 요즘은 배달시키면 기본이 만원이 넘는 시대다. 또 샐러드는 그 몸값이 상당하다. 만약에 고정적인 식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은 분이 채식을 시작하면 나는 말리고 싶다. 환경을 위하는 것도 좋지만 식단에 무리하게 되면 금방 몸과 마음이 상한다.


왼쪽부터 열두냉면, 샐러드, 고기가 들지 않은 김밥과 떡볶이


고기를 먹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욱 강하게 채식으로 가야겠다고 느끼는 점은, 자본주의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을 기반으로 한 지금의 외식산업은 사람들의 고기 소비를 계속해서 자극해서 산업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입맛이 고기를 먹지 않으면 산업이 줄어들 것이다. 산업이 자꾸만 발전한다는 가정에 근거한 지금의 많은 시스템들에는 맞지 않는 옷이다.


많은 관찰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고기가 많은 식당이나 일정이 있는 경우엔 견과류를 왕창 사서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꺼내 먹기도 하고 계란을 조금씩 싸서 시간 날 때마다 먹기도 한다.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과 만나기엔 이미 애정을 주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요즘은 회사 식당에서 고기를 일절 먹지 않는 나를 위해서 직원분들이 계란이나 고기를 넣지 않는 특별 메뉴, 김 같은 것을 몰래 하나씩 가져다주신다. 내가 돈을 더 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라도 지지해 주는 마음에 정말 감사하다. 그냥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뭐 그렇게 감사한 일인가 싶다가도, 이런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받아 금세 감사한 마음이 된다. 


헬스를 그다지 하지 않는 요즘은 인바디를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전보다 몸에 지방의 비율이 높아진 기분이 든다. 누적된 식습관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다시 예민하게 식단을 관리하고 있다. 요즘 드는 생각은, 고기를 먹지 않는 일은 정치적 신념의 문제라기보다는 절제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식단을 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재료로 먹는 일은 쉽지 않다.


계속해서 쉽지 않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 같다. 실제로 그렇다. 이런 방향이 건강에 위협이 된다면 혹은 내가 더 이상 자유롭게 식단을 고를 수 있는 계급이 아니게 된다면 언제든 고기를 먹어야지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경계선에서 잘 지내고 있어서 아직까지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잘 유지하고 있지 않을까. 요즘 내게 던지는 질문으로는 "누군가 시켜서 이미 요리가 되어버린 남은 고기를 먹는 일은 신념은 깨지만 지구에는 득이 되는 일이 아닐까?" "샐러드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 먹으면 더 많은 탄소가 발생되는 것이 아닐까?" 가 있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더 건강하게 먹는 일이 몸에 습관이 되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근황 공유를 마친다. 내 도전을 지지해 주는 주변 사람들께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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