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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K Jul 12. 2020

우체통이 철거되었다

격변하는 세상 속 오춘기의 삶

"해당 우체통은 투입 우편물의 지속적 감소로 인해 아래와 같이 철거하고자 하오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올라간 기온만큼이나 길어진 낮 시간 때문인지 유독 길게 느껴졌던 하루였다. 7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저물지 않은 해를 등에 업고 퇴근하는 길, 빨간 우체통에 붙여진 안내 문구에 마음이 괜스레 쓸쓸해졌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나조차도 우체통에 편지를 넣어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했고, 오히려 요즘 같은 시기에 오래 버티는구나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소멸하여 아득한 과거가 되어가는 주변의 풍경을 직접 마주하니 가슴 한쪽이 괜히 아려왔다. 문득 고개를 들어 떠올려보니, 우체통 옆에서 우표를 팔던 오래된 문구점은 카페로 변해버린 지 오래였다.



조금씩 잊혀가고 조금씩 멀어져 가는 서글픔을 읊조리는 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30대 중반에 접어들며 시대의 변화를 더욱 예민하게 자각하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에 따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커져가고 있다. 


나는 과연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살고 있을까.

 때론 커져버린 아쉬움은 두려움과 걱정으로 이어지곤 한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이에 발맞추지 못하는 삶은 종종 실패한 삶으로 치부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아등바등 대다가, 삶이 너무 버거워질 때면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서서 눈을 질끈 감아버리기도 한다.


이번 코로나 19 관련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 사태가 불러온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대학가에서의 움직임만 보아도 그러하다. 실질적인 대면 강의가 힘들어지면서 온라인으로 실시간 강의가 이루어졌고, 시험 또한 온라인으로 치러졌다. 3월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학교 교정도 제대로 밟지 못한 채 새내기의 삶을 시작하였고, 진로 지도 상담이나 취업 정보 전달도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해외 대학들과 교류하는 교환학생과 어학연수 프로그램 등의 국제교류 프로그램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학생들은 한국의 본인 집에서 해외 대학의 강의를 듣고, 외국 학생들과 교류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당장 몇 개월 전과도 상당히 다른 모습이고,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 모두 분투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을 이어가다 우리네 삶이 거대한 변화의 파도 속에서 여기저기 휩쓸리며 부서지는 물방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하나 명확하지 않은 불확실성 속에서 어디론가 이끌려 가고 있는. 이번에 닿은 곳이 어디인지 둘러볼 여유조차 없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 또 하루를 허덕이며 살아내야 하는 팍팍한 삶의 단면이 느껴지는 것 같아 문득 답답해졌다.


나 또한 실제로 올해를 바라보며 몇 년 동안 계획하고 추진해왔던 일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따금씩 밀려드는 허무함에 고통스러워하며, 내 잘못이 아니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해보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더욱 무기력하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철거를 하루 앞둔 날에 우체통을 다시 찾았다. 우체통 앞에는 꼬마 한 명이 끙끙거리며 엄마의 도움을 받아 편지를 넣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정말로 세상살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이렇게 걱정하고 두려워해 봐야 무슨 소용일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걱정과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기보다는 내 몫을 묵묵히 다 해낸다면, 저항할 수 없는 그 무언가에 의해 실패를 맞이하는 순간에도 나 자신에게는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고, 그렇기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다음 날 우체통은 결국 바닥에 나사 자국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 빈자리가 더 이상 서러워 보이지 않는 것은 마지막 날까지 제 몫을 다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는 기척도 없이 불쑥 찾아와 생각보다 강력하게 이루어지며, 그 과정에서 우리의 과거는 점차 그 빛을 잃어갈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과거부터 가슴속에 소중하게 품어왔던 따스한 빛은 쉬이 바래지 않으며 현재로 이어져 새로운 미래를 위한 원동력이 됨을. 질풍노도의 오춘기 시절에 다시금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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