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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K Oct 04. 2021

기다림의 요가

요가 수련 1년의 기록

모든 것이 쉽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한 마디도 제멋대로 낡고 부서진 칼날이 되어 마음을 긁고 지나가고, 눈앞에 주어진 해야 할 일 앞에서 설렘을 느끼기보다는 숨이 턱 막혀버릴 듯 깎아지른 절벽을 마주한 듯 주저앉고 싶어 지고,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조차 버거워 차라리 마음을 굳게 닫아버리고 싶은. 그렇게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때가 있다. 지난해 여름, 나는 그렇게 지쳐 있었다.



요가원을 찾은 것은 충동적이었다. 저녁 퇴근길에 요가원에서 새어 나와 어둠을 물들인 따뜻한 불빛을 보며, 동네와 잘 녹아드는 소박한 나무 간판을 보며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선뜻 발을 내딛기가 쉽지는 않았다. 요가를 감당하기엔 내 몸이 너무 뻣뻣했고, 예전에 요가가 궁금하여 요가원을 찾아보았지만 남자가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지쳐버린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독이고 싶은 의지였을까. 무슨 정신에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무작정 요가원에 연락하여 수업을 신청하였다.



첫 수업 입장은 뻘쭘하기 그지없었다. 혹시나 남자 회원분이 계실까 했지만 역시나 나 혼자 남자였고, 뒷자리를 노렸지만 수업시간에 맞춰 간 탓에 정가운데 자리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유일한 청일점이자, 초심자이자, 제일 뻣뻣한 수련자로서 그렇게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어색함은 수련을 이어가며 자연스레 사라졌다. 요가는 생각보다 힘들었고, 매트에 땀이 떨어져 색이 짙어져 가는 동안 옆사람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안정감 있지만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고된 동작들을 이어나갈 힘을 주었고, 요가원은 저마다의 호흡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신기하게도 수련이 진행될수록 다른 사람들의 호흡소리마저 이따금씩 들리지 않았다. 내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작은 매트 위의 나 자신, 그리고 나의 숨소리, 시선이 닿는 곳의 풍경만이 머무를 뿐. 물론 대부분은 동작을 따라가기 급급했지만, 나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는 찰나의 순간을 느낀 것만으로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몇 번의 단기권 수업 이후, 정기권을 결제하여 요가원에 다닌 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정기권을 끊을 때만 해도 1년 뒤에는 선생님들의 반만큼은 따라갈 수 있겠지 막연히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요가 초심자의 마음으로 요가원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느리지만 티 나지 않을 만큼 조금씩 성장해왔고 그것으로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그리고 조용히 변화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세 분의 선생님들께도 감사하다.



요가를 이어나가면서 가장 즐거운 점은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집중하면서, 더딘 성장을 기다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왜 더 빨리, 더 잘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질책하는 대신, 나의 현재를 오롯이 받아들이며 내가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과거의 한계를 깨고 나오길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왜 떠올릴수록 어둡고 아픈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끌려다니는지 한숨짓기보다는, 한숨 크게 들이마시며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지 않도록 마음의 무게를 채워가길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벽을 치며 괴로워하기보다는, 찬찬히 벽에 발을 딛으며 넘어갈 수 있도록 힘을 길러가길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마음도 몸도 약해질 때가 많지만, 그때마다 요가를 통해 그런 나를 마주하며 기다릴 수 있으니 되었다.




그렇게 나는 쉽지 않은 삶 속에서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 예전에 본인이 쓴 '요가를 시작했습니다' 글을 다듬어 다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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