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이야기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들 때가 있다.
썰물 때에 모래 알갱이가 바싹 말라 소금기 머금은 바다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다가, 밀물 때의 점점 그 범위를 넓혀가는 파도에 폭삭 젖어 굳어버리는 것처럼.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 정신없이 치여서 나의 감정을 채 느끼지 못하다가 갑자기 몰아친 감정의 소용돌이에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딱딱한 덩어리가 되어 침잠해 갈 때가 있다.
지난 주말에는 아빠의 칠순 잔치가 있었다. 어느덧 아빠가 70대에 접어들었고, 엄마는 6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요새 가끔 부모님이 부재한 집을 생각하곤 한다. 바지런한 엄마의 손길이 곳곳에 스며있는 집안. 손이 큰 엄마의 한상 가득한 저녁 밥상. 나의 바쁜 하루하루에 같이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없음에 서운해하다가도, 누구보다 나를 걱정하는 엄마의 눈망울. 퇴근 후에 나를 보고 환하게 얼굴 가득 번지는 아빠의 미소. 신나게 아빠와 함께 따라 부르던 가곡과 트로트. 문득 내가 예쁘다며 볼을 쓰다듬는 아빠의 두툼한 손.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빈 집. 가끔은 지긋지긋하게 느껴져서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 일상이 모두 사라지고 나 홀로 남은 어느 날.
내가 선택한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삶이지만, 막상 집이 비어버리는 그날이 다가오면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때에도 내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을 때에 내 집에 가득 차 있는 침묵을 비집고 들어가 어둠을 덮고 잠을 청하는 삶이 또 일상으로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여러 면에서 이성적인 성향이 두드러진 나이지만, 가끔 이러한 감정의 폭풍우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해진다. 오히려 확신의 T이기 때문에 이러한 감정에 더 취약한 걸까. 미지의 세계 같은 감정의 영역은 내 마음속의 저변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갑자기 벌어진 틈새를 놓치지 않고 용암처럼 솟구쳐 오른다. 그 용암은 쩍쩍 갈라진 마음속을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며 울렁이게 한다. 용암이 막는다고 막아질 리 없다. 어설프게 막으려는 시도는 그조차 뜨거운 열기로 녹아버리고 만다.
결국 감정의 용암은 여기저기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얼마나 부글부글 끓고 있었을까.'라고 생각하며, 그냥 움푹 파인 골짜기마다 벌겋게 물든 감정의 열기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다. 조용히 내 깊은 곳에 가득했던 상처와 멍울을 확인하며 그리고 그 열기가 식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 열기를 밖으로 뿜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그렇게 갈라진 골짜기를 메운 용암이 식어 전보다 단단하고 평탄한 마음을 만들어내고, 난 또 그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오늘은 내 마음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로 했다. 감정의 용암이 굳어 단단해진 마음으로 또 다른 일상의 하루를 꾸려가야지. 때론 또 새로운 파도가 쓸려 오고, 용암이 터지더라도 결국엔 나만의 무늬를 만들어 가겠지. 그리고 그 무늬를 받아들이며 또 새로운 하루를 꾸려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