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보낼 준비

스물한 번째 이야기

by 마틴K
꿈을 꾸었다.


작은 집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공간이었지만, 꿈속에서 나는 그곳을 어느 정도 편한가 싶으면서도 결국엔 불편해지고 마는 친척 집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는 한 방문 앞에 서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빠가 문을 열고 나왔다. 꿈속에서의 아빠는 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나는 아빠를 가볍게 안아주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아빠는 나를 지나 거실로 걸어갔다.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방문으로 눈을 돌렸더니 그곳에는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친할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고, 살아계실 적에도 명절 때만 가끔 뵈었기 때문에, 골똘히 생각하지 않는 이상 할아버지의 얼굴은 기억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친할아버지의 얼굴은 실제와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꿈속에서 본 그분의 얼굴에 어느 정도 친할아버지의 모습은 남아있었고, 그냥 저분은 친할아버지구나라고 자연스럽게 인식되었다. 친할아버지와의 거리감이 있었던 탓일까, 나는 그 어떤 인사도 하지 않고 할아버지도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방에서 나오자마자 아빠가 향한 곳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으로 발길을 떼었다. 나는 무의식 중에 할아버지가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빠로 향하는 할아버지의 한걸음, 그리고 두 걸음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서둘러 손을 뻗어 할아버지의 팔목을 꽉 부여잡고 낮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은 안 돼요."

그렇게 팔목을 꽉 쥔 채, 나는 꿈에서 깼다.


오랜만에 꾸는 생생한 꿈이었다. 무서울 법도 했지만 무섭기보다는 멍했다. 그렇게 살짝 동이 터오는 듯 하지만 아직 어둠이 가득한 방에서 나는 꿈을 곱씹었다.


아빠의 죽음은 일부러 생각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씩 머릿속에 떠오르는 주제이다. 아니, 늘 머릿속을 맴돌지만 굳이 그 생각을 잡아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괜히 우울해지기도 싫고, 아빠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지 미리 걱정하는 것도 싫어서 일수도 있지만,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아빠가 빨리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 혹여나 들까 경계하는 것이다.


글을 쓰지 않는 중에도 아빠의 병세는 조금씩, 또 어떤 시기에는 생각보다 빠르게 악화되어 왔다. 최근 들어서 아빠는 더욱 맥락 없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뜬금없이 말을 건다든가, 실례가 될 정도로 관심을 보인다든가 하는 일들도 잦아져서 엄마가 민망한 상황들을 무마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그런 삶을 보며 나는 솔직히 아빠가 더 심해지기 전에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한다. 아빠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세월의 풍파에 더해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는 병을 온몸으로 두드려 맞으며 아빠는 앞으로도 더욱 정신을 놓게 될 것이고, 몸도 늙고 병들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아빠를 간호하고 챙기기 위해 정작 자신의 몸과 인생을 챙기지 못하고 있는 엄마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족에게 묶여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 나 때문이기도 하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유튜브를 보며 부러움과 동경 가득한 눈을 반짝이는 엄마의 몸도 세월이 흘러가며 노쇠해지고 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아빠가 더 심해져서 우리가 아빠를 병원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때 엄마 잠깐 바람 쐬고 오자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프게 다가올 때가 많다. 나도 당장 저녁 약속을 잡는 것부터 장기적으로 미래를 계획함에 있어, 아빠와 엄마를 챙기는 것이 1순위가 되어버린 상황이 가끔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깊어지다 보면 아빠의 죽음까지 이어져 화들짝 놀라고 생각의 타래를 끊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생각이 가끔 마음을 흔드는 요즈음. 그날 밤 꾸었던 꿈은 일종의 안도감을 주었다. 난 아직 아빠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아직 아빠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구나. 엄마를 다독여가며 아빠와 함께 따뜻한 추억을 쌓아가고 싶구나. 아빠의 죽음을 바라고 있지 않구나. 아빠를 많이 사랑하고 있구나. 먼 훗날 아빠가 떠나게 되면 많이 슬프겠구나.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저승사자처럼 꿈에서 나타난 친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아빠의 죽음보다는 삶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삶은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더 머리 아프고 슬프기도 하지만, 동시에 안도하고 마음 따뜻해지기도 한다. 또 뜻하지 않은 곳에서 아빠와 엄마와 손을 잡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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