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이 써지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든 글을 써 내려가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흘러가는 삶을 조금이라도 정리해 두려고 시작한 연재이지만, 연재라는 단어가 부끄러울 만큼 정기적으로 글을 쓰지 못했다. 어떠한 내용의 글을 써 내려가야 할지 고민되는 날도 있었지만,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글을 쓰면서 그 무게를 다시금 곱씹으며 인지하기 버거운 날이 많았다.
매일 아침 나는 운동을 하고 있다. 1시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정신없이 계속되는 기능성 서킷 트레이닝인데, 매번 땀에 흠뻑 젖어서 숨을 헐떡이며 샤워실로 향하곤 한다. 하루는 마지막 운동으로 버피가 나왔는데, 이미 지쳐버린 몸은 움직이기가 어려웠고 땀은 온몸에서 누가 물을 뿌린 것처럼 흘렀다. 느리게 흘러가는 타이머를 보며 '이걸 내가 버저가 울릴 때까지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이걸 왜 끝까지 해야 하나, 출근해서 기운이 너무 없겠네' 등등의 잡생각이 가득했다. 내 옆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동작이 점점 느려졌다. 그때 코치님이 말했다. "생각하면 못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몸이 움직이는 대로 계속 움직여요!" 그 말에 힘입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삐 소리가 울릴 때까지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해냈다는 성취감에 바닥에 누워 숨을 거칠게 헐떡이면서도 행복감이 찾아왔다.
삶에서도 너무 깊은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오늘의 아빠의 상태는 치매 발병 이후 가장 안 좋다. 이 명제는 내일이 되어도 계속 참이다. 아빠가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 치매란 병은 나아질 수 없는 병이고, 하루하루 얼마나 안 좋아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슬프고 화가 나는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아빠의 마음을 다독이고 주위를 환기시키는 것이 전부인, 무시무시하고도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병이 바로 치매이다. 물론 하루하루 비교해 보면 비교적 상태가 나은 날도 있고, 최악 중의 최악인 날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전반적으로 새파란 하락 곡선을 그리는 것이 명확한 희망이 없는 슬픈 병이다.
변화하는 것이 있다면 병세가 악화되는 속도이다. 매일 같이 살을 부대끼며 살고 있기에, 병세가 진행되는 것을 잘 모를 줄 알았는데, 최근에는 병세의 악화 속도가 점차 빨라지는 느낌이다. 망상과 우울감에 빠지는 빈도가 잦아졌고,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길어졌다. 엄마의 짜증 섞인 말에 대한 예민함도 커졌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상황도 잦아졌다. 하루가 갈수록 나빠지는 아빠의 상태에 가장 가까이에서 아빠를 돌보는 엄마의 상태도 좋았다, 안 좋았다를 반복하였다. 엄마는 우울감을 토로했고, 이런저런 일로 내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지면 엄마는 참았던 서운함을 울음으로 토해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마음을 다져도, 위태롭게 쌓인 젠가 탑처럼 작은 바람에도 무너지는 것이 사람의 감정이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는 굳이 우리 가족 안에서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들까지 억지로 억누를 수는 없는 일이지만, 굳이 억지로 나의 신세에 대한 생각, 아빠 엄마에 대한 다양한 감정들을 되새기지 않기로 했다. 그저 생각 없이 버피를 이어가는 것처럼, 일상을 하루하루 충실히 채워가는 기계처럼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다른 생각하며 멍해질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매일 아침 운동도 하고, 대학원에도 들어가고, 외국어 공부도 하고, 프로젝트성 일도 참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글쓰기가 많이 버거웠다. 이와 더불어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아 화와 짜증이 났지만, 글을 쓰며 다시금 생각하니 이해가 되는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과 감정까지 품어줄 여유가 없었다. 땅굴을 파고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갈 수 있다. 일상을 잘 버텨낼 수 있을 만큼의 생각의 깊이를 정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한 적절한 깊이를 정하 고나니,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너무 깊은 생각은 감정을 뒤흔들 때가 많다. 흘러넘치는 감정은 결국 감정의 쓰레기통을 만든다. 그 쓰레기통이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고, 주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 왜 이런 상황이 주어졌는지를 한탄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당분간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정신없이 채워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