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연휴를 맞아 하루 휴가를 쓰고 부모님을 모시고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관광지를 돌아다닐 체력이나 상황은 되지 않아, 5성급 호텔의 높은 층을 예약했다. 하나의 객실에 거실과 방이 2개인 프리미엄 객실이어서 결제하는 순간까지 많은 고민이 되었지만, 해외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이니 해외여행 간다고 생각하고 부모님을 위해 결제 버튼을 눌렀다. 사실 이 여행은 엄마를 위한 여행이었다. TV에 좋은 여행지가 나올 때마다 연신 "가보고 싶다!"를 외치는 엄마를 생각하면 호텔에 쓰는 시간과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이것도 아빠가 그나마 지금과 같이 거동할 수 있는 상태일 때에나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니, 여건이 될 때 부지런히 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아빠의 돌발 행동이 걱정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병간호의 일상 속에서 엄마의 기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아빠가 아주 좋아하는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이 있다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2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한 호텔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3명이서 사용하기에도 방은 공간은 넓었고, 가구며 침구며 모든 것이 완벽했다. 호텔 직원분들도 아주 친절했고, 특히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42층에서 바라보는 공원과 잘 정돈된 도시의 풍경은 호텔로 향하는 도로처럼 꽉 막혀있던 내 마음을 뻥 뚫어주었다. 무엇보다도 기뻤던 것은 엄마와 아빠의 반응이었다. 엄마는 소녀가 되어 연신 사진을 찍었고, 아빠도 여기가 누구의 집이냐고 계속 물어보면서도 바깥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긴장이 풀려 내 방으로 들어가 눈을 붙였다.
15분쯤 잤을까, 엄마가 나를 깨우며 아빠가 자꾸 방을 나가려 한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순탄할 리가 없지. 얼른 거실로 나가 아빠의 상태를 확인해 보니, 아빠의 눈에는 이미 빛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짜증과 혼란만이 가득해서 집으로 가겠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빠도 잠깐 잠에 들었고 잠결에 눈을 떠보니 갑자기 낯선 풍경이 펼쳐져 그때부터 호텔 방을 자꾸 나가려 하고, 집에 가겠다고 화를 내는 상황이 펼쳐졌다고 했다. 이미 발작과도 같은 불안감에 잠식당한 아빠는 그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갈수록 더 떨렸고, 나는 무력함에 무너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엄마와 내가 간절히, 때로는 소리 높여 여행을 온 것이고, 이곳은 호텔이라 하룻밤 여기서 잘 것이라고 말해도 단단하고도 매끈한 거울이 되어버린 아빠는 모든 이야기를 튕겨내었다. 15분 전의 평온함이란 온데간데없었고, 내 안의 짜증이 점점 커져 가슴속이 답답해졌다.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붙잡으려 노력하면서도 짜증은 자잘한 가시가 되어 내 말에 섞여 나왔다. 방의 공기는 점점 무거워져 숨을 막히게 했고, 나의 인내심도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행히 엄마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아빠를 모시고 바깥에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집에 가는 줄 알고 방을 나선 아빠는 계속 기분이 나쁘다가, 지나가는 아기들과 인사를 나눌 때마다, 선선한 바람이 볼을 스칠 때마다 서서히 미간의 주름을 펴고 평온함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빠의 변화에 엄마와 나도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준비해 간 노트북을 TV에 연결해 아빠가 좋아하는 영상을 틀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가져온 노트북과 케이블이었는데, 아빠가 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할 때마다 영상을 틀어 아빠의 주위를 환기시켰고, 호텔에서 잠을 자고, 이후 집에 돌아올 때까지 큰 문제없이 여행할 수 있었다. 긴장을 놓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 싶었던 여행이었다. 엄마의 기분도 훨씬 나아졌고, 친구들에게 연락해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보람도 느꼈다.
그런데 나의 몸 상태가 이틀 뒤에 안 좋아졌다. 아무래도 장거리 운전과 계속되었던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에서, 회사에 출근하여 정신없이 일하면서 체력도, 기분도 모두 다운되었다. 특히 회사에서 퇴근 무렵 지난한 실랑이를 하며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 퇴근했던 터라 그 마음이 풀리지 않고, 휴일 내내 나 자신을 짓눌렀다. 그리고 이번 휴일에는 꼭 해내리라 다짐했던 산적한 개인적인 업무가 갑자기 시작된 가족과의 점심으로 인해 깨지게 되면서,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지 짜증과 좌절감이 밀려왔다. 점심 식사 자리에서도 겨우겨우 밥을 먹었고, 얼굴에 드러난 감정의 민낯에 엄마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얼른 점심을 마무리하고 나는 내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근처 카페로 빠져나와 쌓여있는 개인적인 일들을 해치웠다. 이러한 감정 상태로 아빠 엄마와 함께 있다간 내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정신없이 일을 하며 마음을 다독이고, 다시 녹다운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한바탕 또 불안감과 망상의 터널을 거쳐왔었는지 시무룩해 있었다. 겨우 텐션을 올려 아빠의 기분을 맞춰주었고, 다행스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의 마음이 다시 밝아졌다.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며 머리를 비우려 노력했다. 잠이 쉬이 들지 않아, 쇼츠를 넘겨가며 보던 그때, 울컥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쇼츠에 뜬 것은 대구 지하철 참사 때에 딸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아빠의 메시지였다.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하게 커야 해. 아빠가 미안해."
어린 시절부터 아빠가 자주 했던 말이라서, 마치 아빠가 나에게 해주는 말처럼 느껴졌다. 만일 아빠가 나중에 정신이 잠시라도 돌아오는 순간이 온다면, 혹은 정신이 돌아오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나 저 하늘에서 맑은 정신을 되찾게 된다면, 아빠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분명 착하고 따뜻한 아빠는 나와 엄마에게 미안해할 것이다. 아빠 잘못이 아님에도 아빠에게 짜증을 토해내곤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안해하는 엄마와 나처럼, 아빠도 아빠 잘못이 아님에도 우리에게 미안해 어쩔 줄 모를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니 울음이 터져 나오고 입은 연신 아빠를 불러댔다. 우리들은 잘못이 없다. 그저 치매라는 병의 문제일 뿐. 하지만 그 병으로 인해 우리는 서로에게 미안할 일을 저지르고 있다.
울음이 잦아들고 내 몸과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의 앙금, 뻣뻣하게 굳어있던 근육들이 녹아내렸다. 아빠가 정신이 든다면 우리에게 분명 미안해할 것이라는 확신은 이 모든 상황은 아빠의 탓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 언젠가 아빠가 여러 가지 상황에 지쳐있는 나를 안타까워하며 옅은 미소를 지으며 꼭 안아주었을 때의 따스한 온기가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듯했다.
아빠의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는 것처럼, 아빠의 곁을 지키는 나와 엄마의 감정도 롤러코스터만큼은 아니지만 청룡열차 정도로 오르내리기 마련이다. 그런 오르내림 속에서, 우리의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아빠의 행동과 말이 전혀 아빠의 본모습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복이란 것을 깨닫는다.
분명히. 나는 아빠를 사랑하고, 치매에 걸린 아빠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