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중학생 여자 아이들 네 명이 카페이 들어왔다. 참새처럼 오밀조밀 모여 앉아 별거 아닌 것에도 까르르 웃음이 터지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자리가 가까워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 내가 어릴 적에 친구들과 나누었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친구들 얼굴도 생각났다. 아직 나도 젊은(?) 나이지만, 젊음이란 그 자체로 에너지 넘치고 푸릇푸릇하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창 일을 하던 중. 충격적인 이야기가 내 귓전을 때렸다.
"나 진짜 자살할까?"
너무 놀라서 노트북에 얹은 손을 내려놓고 학생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말투는 전혀 심각하지 않았다. 여느 소녀들의 가볍고 청량한 말투에, 자살이라는 무거운 단어가 얹어지니 그 괴리감에 충격이 더 컸다. 내용을 들어보니 가벼운 투정이었다. 학원에서 월말 평가를 하는데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해서 걱정된다는 내용의 대화에 일종의 추임새이자 감정 표현으로 자살이란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었다. 더 할 말을 잃게 만든 건, 다른 학생들도 "나도 자살각이야"라고 말하며 동조했다는 사실이었다.
몇 년 전 나는 정신과를 찾은 적이 있다. 엄마는 다른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주말에는 집을 비워서 내가 아빠를 계속 돌봐야 했고, 당시 나는 무능했던 팀장님과 인력 감축으로 퇴근 후에도 계속 일하며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도 극에 달했다. 그 와중에 문득문득 아픈 아빠와 힘들어하는 엄마를 두고 유학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었고, 내 뇌는 쉴 틈 없이 고민하고, 체념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나의 감정이 폭발해 버렸다. 아빠가 갑자기 혼란이 왔고, 망상에 괴로워하다가 엄마와 내가 돈을 가져갔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나의 마음에는 아빠의 격해진 감정을 받아들일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고, 꾹꾹 눌러 담아 두었던 감정이 댐이 무너지듯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그때의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소리를 지르며 오열했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겨우겨우 가쁘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때에는 엄마가 계셔서 흘러내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를 방에 들어가라고 하셨고, 나는 방에서 더 한참을 울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라는 생각이었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아빠가 진정된 이후 엄마는 내 방에 들어와서 아직 흐느끼고 있었던 나를 토닥여주었고, 집은 신경 쓰지 말고 유학을 떠나라고 하셨다. 그 말에 나는 또 무너져서 한참을 울었고 엄마도 울었다.
폭풍 같았던 그날 밤이 지나고, 나는 다음날에 바로 정신과를 찾았다. 이성을 찾자 나의 극단적인 생각이 두려워졌고, 더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날 오후에 바로 진료 예약이 가능했고, 병원 한편에 마련된 소파에서 검사를 진행했다. 최대한 솔직하게 내 마음을 적으려 노력했고, 검사 문항을 읽고 답변하면서 오히려 내 상태가 괜찮은 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결과지를 받아 든 선생님은 생각보다 우울증 증세가 꽤 진행된 상태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정기적으로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하기도 하고, 약도 먹으며 적극적으로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쉽지는 않았다. 아빠와 어쩔 수 없이 계속 부딪혀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고, 매일 4시간씩 자면서 일해야 하는 팍팍한 직장 생활도 계속되었다. 약을 먹으면 속이 안 좋아서 더 신경이 쓰이기도 했고, 약에 너무 의존하게 될까 걱정되기도 하였다. 눈을 가리고 치과치료를 받기도, 미용실에서 한 자세로 머리를 자르기도 힘들어서 나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그 시간을 버티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증상은 차츰 나아졌다. 물론 갑작스러운 자극에 무너지는 일도 있었지만, 그 빈도와 정도가 눈에 띄게 줄어갔다. 그 회복 속도가 결코 빠르지는 않았지만, 약을 점차 줄여갔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약 없이도 점차 나빠지는 아빠의 상태도 오롯이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아졌다.
돌이켜 생각하면 나의 마음을 다독여서 현실에 오롯이 나를 푹 담글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아예 세상을 등지고 싶은 지독한 좌절과 우울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쳤고, 너무 늦지 않게 나의 상태를 직시하고 의학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사실 약보다도 가장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나의 밑바닥 마음까지 모두 털어놓았던 의사 선생님과의 짧은 상담시간들이었다. 그 시간을 거치면서 이 모든 상황들이 나 혼자 끙끙거리며 꾹꾹 눌러 담아야 하는 상황도, 나에게만 잔인하게 주어지는 비극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좀 더 무던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사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지만 또 괴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망상이나 혼란이 없을 때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무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난 그렇게 어둠을 빠져나와 한 뼘 더 성장했다.
자살이라는 말은 결코 가볍게 던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 자체로도 큰 무게감을 가지고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단어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절벽에서 간신히 꽉 붙잡고 있던 생의 끊을 놓아버리고자 하는 깊은 좌절을 담은 말이고,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 가까스로 숨을 헐떡이다가 그 숨마저 내려놓고자 하는 짙은 절망을 담은 말이다.
말은 강하다. 삶의 긴 터널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사람들이 숨죽이며 고민했던 그 무거운 단어는 소녀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