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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K Jul 31. 2024

엄마는 이제 갈 일이 없어

열일곱 번째 이야기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의 가장 큰 복지 중 하나는 1주일 동안의 여름휴가다. 7월 중 1주일 동안은 회사 문을 닫고, 꼭 필요한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출근하지 않는다. 물론 연차와는 별개다. 여러 가지 내부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잡음과, 사람 사이의 갈등, 주먹구구로 진행되는 일들에 치이며 현타가 차올라도, 7월이 가까워져 오면 그래도 이만한 회사가 어디 있냐 싶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아침에 회사에 나가고, 퇴근하면 집에 돌아와 아빠와의 시간이 시작되는 쳇바퀴 속에서 운동도 하고, 프로젝트성 파트타임 일도 하고, 공부도 하다 보면 하루가 모자라다. 꽤나 잦았던 이직으로 주어진 휴가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주씩 주어지는 꿀맛 같은 휴가는 나에겐 무척이나 소중하다.


이번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많았다. 혼자 살 때였으면 훌쩍 멀리 미주나 유럽으로 떠났을 수도 있지만, 아빠를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아빠와 함께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1년 전,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떠난 오키나와 여행은 막연히 돌이켜보면 행복하고 아련한 추억이었지만, 조금만 더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 들어가 보면, 혼란과 불안이 가득한 여행이었다. 아빠 혼자 진행해야 하는 입국수속부터 쉽지 않아서 수속 담당자와 실랑이가 있었고, 중간중간 요동치는 아빠의 감정에 마음 졸여야 했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신청한 운전기사 분의 역할과 존재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누구신지 묻기를 반복했다. 여행의 중반 즈음엔 나이 지긋하신 기사님이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졌는지 손을 갑자기 덥석 잡기도 하고 포옹하기도 하며 기사님을 당황시켰다. 크고 작은 일들의 반복 속에서 이제 아빠와의 해외여행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아빠와의 해외여행이 요원해졌으니, 아빠 곁을 지키는 엄마도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 혼자 1주일 내내 집을 비우는 건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고민을 계속하다가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이라도 다녀오려고 여행 2주 전에 표를 끊었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좀 가까운 해외라도 나가서 숨통을 트이고 싶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돌아오기도 쉽고, 일본은 익숙하니까 일정을 짜고 여행을 준비하는 데에 시간도 많이 안 들었다. 일본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지에서도 마음 편히 다닐 수 있고, 일정이 끝나고도 바로 일상에 복귀해서 아빠를 돌볼 수 있다. 엄마에게도 어렵게 말을 꺼냈고, 엄마는 아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표정으로 잘 다녀오라고 아들에게 3일 휴가를 주었다. 같이 가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미안한 마음은 잠시 내려두고 여행 가기 전과 후에 아빠를 잘 돌봐야겠다 다짐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은 아빠와 엄마가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아무런 일정을 잡지 않고 엄마와 아빠와 하루종일 함께했다. 오랜만에 아빠와 계속 붙어 있다 보니, 내가 퇴근하고 나면 엄마가 좀 날카롭거나 지쳐있던 이유를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날은 아빠가 유독 혼란스러워하고, 기분도 우울해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계속 쉬었고, 신세한탄과 말도 안 되는 공상과 망상을 계속했다. 웃으며 계속 받아주려 노력하였지만, 나의 인내심은 이내 바닥을 쳤다. 그래도 겨우 정신을 붙잡고 아빠의 손을 꼭 잡고 안아주며 위기를 넘겼다. 내가 아무리 기분을 풀어주려 1시간 동안 노력해도 안되던 것이 유튜브에서 귀여운 아기 얼굴이 나오자 밝게 웃는 아빠를 보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밉고 서운하게도 느껴졌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씨 탓인지 그날 유독 아빠의 상태가 심했던 것도 있었지만, 내가 회사에 가있는 동안 엄마는 이런 아빠를 오롯이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 이걸 새삼스레 다시 깨닫게 되니 마음이 너무 아파, 옆에 있는 엄마의 손을 쓰다듬었다. 병원에서도 아빠의 우울감은 왔다 갔다를 반복해서 난 아빠 곁을 계속 지켰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한숨 쉬며 계속 찾을 때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화를 꾹꾹 눌러 담았다. 여행을 앞두고 내 감정도 예민해져 있었다. 엄마에게 맡기고 떠나는 게 가뜩이나 미안한데 아빠의 상태도 정점을 찍으니 나의 짜증도 더 커졌다.

그러던 중 엄마가 내가 짐을 싸둔 방에 잠깐 머물다가 나왔다. 엄마 옷이 있던 곳에 가방을 두어서 옷을 가지러 간 것이겠거니 했다. 마지막으로 잘 챙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방을 열었더니 엄마가 예쁜 봉투에 맛있는 걸 사 먹으라며 넣어둔 엔화가 보였다. 아빠가 이렇게 심해지기 전 언제든 일본은 갈 수 있다며 환율이 낮을 때 조금씩 모아둔 엔화였다. 나는 그 돈을 받을 수 없었다. 난 다시 그 돈을 꺼내 엄마가 자주 쓰는 노트에 끼워두고 엄마에게 충분히 환전해 두었으니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이제 난 갈 일도 없는데 뭐. 가져가서 네가 써."

엄마입에서 쓸쓸히 흘러나온 말이 돌이 되어 가슴에 퉁 떨어졌다. 아빠가 나중에 시설로 가게 되거나 하면 같이 가면 된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아빠와 떨어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더 마음 아픈지 그런 소리는 하지 말라고 했다.


퇴직하고 노년에는 여기저기 놀러도 많이 다니고 다양한걸 배우며 인생을 즐기고자 했던 엄마의 계획은 아빠의 병으로 인해 모두 틀어져 버렸다. 그렇게 좋아하는 아들과의 해외여행도 얼마간은 가지 못할 것이다. 엄마의 머릿속에서 아빠를 시설로 보내는 시점은 아직 한참 먼 일이다. 엄마가 요새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이 자주 보여서 아빠를 보내는 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있지만, 그 말을 하는 내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고 엄마도 아직은 그런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현실을 머금고 있다가 하루하루를 꿀꺽 삼켜버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엄마는 많이 지쳐가고 있다. 치매는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병들게 한다.

난 그래서 엄마의 돈을 더 받을 수 없었다. 언젠가 엄마랑 해외로 갈 수 있는 상황이 되면 훌쩍 엄마와 함께 주저 없이 떠날 거다. 온천도 하고 따끈하고 바삭한 튀김도 먹고 예쁜 풍경도 보면서 엄마와 손잡고 다닐 준비가 되어있다. 그때 엄마에게 오랫동안 간직해 둔 엔화로 맛있는 커피를 사달라고 해야지.


그날까지 엄마가 꼭 건강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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