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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K Jul 10. 2024

아스라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열여섯 번째 이야기

우리 가족은 성당을 다닌다. 매주 미사를 빠지지 않고 다니고 있고, 친척 중에는 성직자도 있을 만큼 나름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다. 몸이 물에 불은 국수 가락처럼 축축 늘어진 날이면, 성당에 가기 싫을 때도 많지만,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신앙심을 차치하고서라도 한 주 동안 가뜩이나 사회생활로 복잡한 머리 때문에 미뤄두었던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관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미사 시간 한 시간이 나에겐 무척 소중한 시간이다.


또한 미사는 나에게 가족과 마음으로 함께 있는 시간이다. 미사 중에 주름진 아빠와 엄마의 손을 꼭 붙들고 함께 기도할 수 있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는 서로를 꼭 끌어안으며 체온을 나눈다. 무엇보다도 성당으로 향하는 길,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 아빠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맛있는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 일. 성당을 둘러싼 모든 일이 가족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다. 내가 그렇게 신앙심이 엄청나게 두터운 것은 아니지만, 이상적인 가족을 생각할 때에 늘 성당이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나는 우리 동네 성당의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 성당에서도 긴장의 끊을 놓을 수 없는 아빠의 상태 때문에 고민했지만, 청년부 회장의 끊임없는 권유와 동네 친구들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성가대에 들게 되었다. 아빠 곁에서 미사를 드릴 수는 없지만, 다행히도 아빠는 아직까지는 별다른 돌발행동 없이 엄마 곁에서 미사 시간을 잘 보내고 있고, 나도 아빠에게 들리도록 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2주 전에는 미사를 마치고 성가대 회식이 있었다. 사실 매주 저녁미사가 끝나고 나면 대부분 저녁을 먹고 헤어지지만, 나는 보통 부모님을 모시고 집으로 가곤 했다. 하지만 성가대 친구들 과의 저녁 식사 자리도 중요해서 한 달에 한 번쯤은 엄마 아빠만 집으로 보내고 공식 회식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미사를 마치고, 재빨리 성당 대문 앞으로 나가 엄마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는 나를 보더니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날따라 나를 더욱 반가워하는 아빠를 한번 꼭 끌어안고, 집까지 걸어가려면 목이 마를 아빠를 위해 준비해 둔 차가운 물을 드렸다. 그리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갈 테니 엄마와 먼저 집에 들어가시라고 조곤조곤 설명했다. 아빠는 아주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지만, 빨리 들어오라는 말을 하고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성당 문 앞에 서서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봤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엄마의 치마. 엄마를 보호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꽤나 듬직한 아빠의 뒷모습. 어두운 먹구름 사이로 흘러드는 햇살.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낯설게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순간 아빠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했다. 언젠가 나의 곁에서 훌쩍 사라질 엄마와 아빠. 아빠와 엄마의 가는 길이 마치 이럴 것만 같아서. 아빠와 엄마는 멀어져만 가는데, 나는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이 서글퍼졌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만으로도 버거울 때가 많기 때문에,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은 억지로라도 안 하려고 하는 편이다. 엄마 아빠가 없는 미래는 나에겐 너무나도 슬프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미래가 될 것이다. 아빠의 병세가 깊어지고, 엄마도 기력을 잃고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면서 두 분과의 이별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별의 순간을 걱정하기보다는 이별에 이르는 그 시간 동안 후회 없이 두 분과 함께하는 따뜻한 추억을 많이 만들기로,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하기로 매번 다짐하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뜻하지 않은 순간에 내 감각 기관을 통해 부모님의 부재에 대해 감각하게 되면, 단단히 버티고 있던 마음의 둑도 스르르 무너져 내리고 만다. 감각은 이성보다 강하다. 매번 그렇게 느낀다. 이번에도 점점 작아져가는 아빠와 엄마의 그림 같은 뒷모습에 내 가슴은 저릿하게 전류가 흘렀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갑작스레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마주하기가 고통스러울 때가 많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준비한다고 해서 이별의 아픔이 줄어들거나, 이별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일 리 만무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 마치 그날 아빠와 엄마의 집 가는 길을 배웅했던 그 순간처럼,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 아빠와 엄마를 꼭 끌어안으며 하늘나라로 떠나는 두 분을 겨우겨우 배웅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아들을 잃은 아빠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린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납골당에 시신을 운구하다가 잠깐 들른 휴게소에서 그 아빠는 아들을 위해 차 주변을 맴돌며 아들에게 즐겨 불러주던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아들이 어두운 관 속에서 무서워할까 봐. 아빠는 아들이 가는 길을 마지막 순간까지 돌봐 주었다.


나도 아빠 엄마를 그렇게 보내고 싶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그 순간이 다가오면, 나는 나의 숨결과, 체온과, 목소리를 담뿍 묻혀 엄마와 아빠가 조금이라도 숨차지 않도록, 춥지 않도록, 무섭지 않도록 배웅할 것이다.


여러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아니 그런 상황에서 더더욱, 난 아빠와 엄마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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