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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K Jun 19. 2024

친척들이 모였다

열다섯 번째 이야기

오랜만에 할머니 기일을 맞아 친가 친척들이 모였다. 1년 반 만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생 때 돌아가셨고, 할머니도 치매로 오래 고생하시다가 내가 대학생 때에 돌아가셨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우리는 명절 때 몇 번 얼굴을 보다가, 아빠의 병세가 심각해진 후론 그나마 가던 큰집도 가지 않게 되었다.


나에겐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사촌 형 누나들도 이미 저마다의 가정이 생기고 자식들도 태어났고, 이미 작은아버지 식구들은 얼굴조차 못 본 지 오래였다. 사실 명절이라고 오촌 이상의 식구들까지 다 모여서 제사를 드리거나 얼굴을 보는 집은 많지 않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우리 아버지 세대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중심으로 떨어져 나왔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 저마다의 가족으로 쪼개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렇다고 내 마음속에 친가 쪽 식구가 그렇게 얼굴을 꼭 보고 지낼 만큼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아빠야 직접적으로 피를 나눈 가족이니까 더 애틋한 마음이 있겠지만, 명절 때마다 우리 집에서 음식을 도맡아, 엄마를 중심으로 아빠와 동생과 함께 집안 가득 숨이 막히도록 가득한 기름 냄새 속에서 전을 부치던 기억들, 알게 모르게 말과 행동으로 상처받았던 기억들 등등이 쌓이고 쌓여 굳이 얼굴을 봐야 하나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물론 죽어도 보기 싫다는 정도까지는 아니고, 보고 싶은 가족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명절에도 여느 가족들처럼 해외여행까진 못 가더라도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오손도손 명절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런데 아직도 큰집에서는 사촌 형을 중심으로 1년에 한두 번 모여서 얼굴도 보고 제사도 지내고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나 보다. 마지막으로 명절에 모였을 때도 그렇고, 그 이후에도 사촌형에게 계속 연락이 와서 앞으로 가족 모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성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야기한다. 나는 전화 자체가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다. 그냥 각자 집에서 알아서 하자는 말이 차오르는데 나도 왜인지 모르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아빠가 아픈 이후부터는 굳이 아빠와 엄마를 모시고 그 먼 길을 달려 힘들게 얼굴들을 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가기로 한 것은 아빠를 위해서이다. 아빠의 피붙이들을 본다고 해서 아빠의 상태가 나아진다거나, 아빠가 이번 만남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자주 엉엉 울며 형, 여동생,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아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저릿하게 아파올 때가 많다. (그렇다.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많다.) 이번에도 할머니 기일 겸 모이자고 연락이 왔을 때에도 너무 가기 싫었지만,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몇 번 보지 못할 가족들의 모습을 하루라도 더 볼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부모님과 동생을 사랑하고 늘 보고 싶어 하듯이, 아빠도 형제들을 비롯한 가족들이 그리울 테니까.


아빠는 가족들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조카들은 물론 알아보지 못했고, 그렇게 보고 싶다고 찾던 형도 너무 늙어버린 모습 때문인지, 길어버린 수염 탓인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절을 하면서도 누구의 납골당인지 알지 못했다. 그나마 아빠랑 계속 연락을 하며 친하게 지냈던 고모만 기억할 뿐이었다. 그래도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빠가 행복해 보였다. 모두 아빠의 상태를 잘 알고 있기에 모두 아빠에게 친절했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특히 아빠는 사랑하는 여동생인 고모와 이야기하면서 많이 웃었다. 사촌형의 아이들을 볼 때에도 아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행복해했다.


그저 그랬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아빠가 가족들 중에 가장 친한 고모네 식구들과 따로 커피를 마시러 갔다. 고모는 엄마와도 친하고 나도 좋아해서 피곤했지만 식당 바로 옆의 예쁜 카페로 향했다. 아빠는 고모의 곁에서 고모의 얼굴을 몇 번이고 보며 너무 늙어버렸다고 안타까워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얼굴에도 좋은 화장품을 많이 바르라고 이야기했다. 고모는 그런 아빠를 보며 눈물을 흘렸고 아빠는 본인 때문에 우는 줄도 모르고 힘든 일이 많나 싶어 안타까워했다. 한창 이야기를 하던 엄마도 울음이 터졌다. 고모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울컥 아빠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빠의 집중력은 떨어져서 카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내가 아빠를 챙겨야겠다 싶어 마당으로 나가 카페에 매달려있던 그네를 함께 탔다. 아빠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집으로 돌아와, 주말에 하려고 따로 떼어놓은 업무를 처리하고, 성당까지 다녀온 뒤 너무 힘이 들어 침대로 쓰러졌다. 몸은 지쳤지만, 보람이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을 아빠의 생애 동안 아빠와 함께 피를 나누고 아빠의 찬란했을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빠에겐 너무도 소중한 시간처럼 보였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빠는 가는 길도, 오는 길도 짜증 한번 부리지 않았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중에도 연신 평온했다. 오히려 아빠의 손을 잡고 다니며 상태를 살피는 내가 더 불안한 느낌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족이지만, 아빠를 보면서 다시금 그래도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빠가 고모를 바라보면 아직도 개울에서 장난치면서 놀던 국민학생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나에게도 착하고 예쁜 동생이 있다는 사실이 안도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흐려져가는 기억 속에서도 고모와의 따뜻한 추억들은 아빠의 머릿속에 또렷이 살아있고, 고모의 존재를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아주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빠를 바라보며 요즘에 문득문득 드는 생각은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점이다.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핏줄이라는 그 존재 자체를 그리워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가족들과 함께한 소중한 공간과 추억에 대한 그리움의 의미가 클 것이다.


오래되어 글자가 거의 다 지워져 버린 영수증 조각처럼, 아빠의 추억들도 점차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지만, 아빠가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추억에 힘들어하기보다는 희미해져 가는 추억에 풍덩 빠져 그 시절의 아빠로 돌아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힘들고 선뜻 내키지 않더라도 운전수 역할을 열심히 해야겠다. 아빠가 행복한 아이로 돌아가 귀여운 여동생에게로 달려가는 자동차를 힘껏 몰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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