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이야기
치매란 병은 불쌍한 사람으로 만든다.
이건 치매에 걸린 본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치매란 병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불쌍한 사람으로 만든다.
최근 아빠는 대장내시경을 받았다. 아빠의 배변에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엄마는 아빠를 데리고 예전에 찾았던 병원에 갔고, 그 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해보자고 하였다. 운명의 장난인지 병원에서 잡은 검사일은 내가 일본으로 출국하는 날이었다. 3일만 있으면 돌아오니 엄마에게 그 이후로 검사일을 변경해 보자고 하였다. 사전에 장을 비우는 절차에서부터 금식과 병원에서의 오랜 대기시간 등등 이런저런 고비가 머릿속에 그려졌고, 나라도 있으면 엄마가 덜 힘들 것 같아서 일정을 미루어 보자고 했다. 엄마는 잠깐 고민하는 듯했지만, 곧 원래 일정대로 내시경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엄마는 별일 없을 것이라고 둘러대었지만, 착한 엄마는 아빠가 혹시나 병이 있으면 하루라도 일찍 치료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대장내시경 전날 엄마와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아빠에게 대장내시경 약을 먹였고, 아빠는 화장실을 오고 가며 대장을 잘 비워내는 듯했다. 나는 두 분이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함께 있다가 잠을 청했고, 새벽에 일어나 두 분이 잘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비행시간에 맞추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집에 연락해 보니, 집은 난리가 나 있었다. 아빠는 깊은 잠에 들어 미처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침대에 실수를 하였고, 엄마는 그걸 치우랴 아빠를 씻기랴 병원에 갈 준비 하랴 정신없는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3일 동안의 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내가 엄마 곁에 있었으면, 함께 아빠를 챙겼을 텐데. 그래도 엄마는 아빠를 다독이며 이 모든 일들을 초인적인 힘으로 차근차근 해내었다. 병원에 가서도 오랜 기다림에 지쳐 집에 가자고 보채는 아빠를 어르고 달래며, 초음파 검사와 대장내시경까지 잘 마쳤고, 집에 돌아와서 빨래를 돌리고 집안을 정리하며 사태를 수습했다. 다행히 용종과 췌장의 염증 정도만 나와서, 그다음 이틀 동안 동네 내과를 왔다 갔다 하며 한 번 초음파 검사를 한 다음 약을 받아 돌아왔다. 찌는듯한 더위에 엄마는 아빠의 손을 잡고 이 모든 일을 해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속에 스트레스는 가득했다. 아픈 아빠를 위해 꾹꾹 눌러 담고 표출하지 않았을 뿐, 엄마의 마음은 탄탄한 듯 보이지만 긁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스르르 무너져 버리는 모래탑과 같다. 한국으로 귀국해서 아빠 엄마와 시간을 보내다가, 그다음 날 저녁을 먹고 들어오니 엄마의 기운이 냉랭했다. 엄마의 모래탑은 흔적도 없이 무너져 있었다. 아무리 엄마를 꼭 안아주어도, 엄마의 몸은 짜증과 화로 꽝꽝 얼어서 녹아내리지 않았다. 그날도 아빠와의 여러 차례의 실랑이를 거치며 엄마의 분노가 폭발해 버렸던 것이다. 전 같으면 넘어갔을 법도 하지만, 반복되는 아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과 그에 따른 후폭풍이 유독 무자비하게 마음을 헤집어 놓을 때가 있다.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아빠가 불쌍했다. 본인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화가 난 엄마에게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횡설수설 맥락 없는 말을 늘어놓는 아빠가 불쌍했다. 일련의 사태 이후, 엄마를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엄마에게 잘 챙겨주어 고맙다고 말하는 아빠가 불쌍했다.
엄마가 불쌍했다. 아빠를 돌보느라 본인의 감정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엄마가 불쌍했다. 아빠를 돌보느라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늙어가는 엄마가 불쌍했다. 그렇게 화가 났으면서도 아빠는 본인 손으로 돌보겠다는 엄마가 불쌍했다.
그냥. 모두가 불쌍했다. 난 엄마를 끌어안았다. 엄마 얼굴은 갈수록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닮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린 함께 울었다. 내가 먼저 울음이 터졌고, 엄마도 나를 안고 같이 울었다. 곧 마음을 다잡고 울음을 그쳤지만, 그냥 치매라는 병 앞에서 우린 그냥 불쌍한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난 비교 우위적인 상황을 통해 우리의 상황을 자위하곤 했다. 폭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치매를 가진 환자, 도박과 바람으로 집안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아버지,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잃은 피해자 등등의 다소 극단적이지만 TV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상황들과 우리 집의 상황을 비교하며 일종의 상대적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위로가 부끄럽게도 단기적이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체념할 힘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켜켜이 쌓여있는 감정의 둑이 무너지는 날이면, 이 모든 비교 우위는 무의미해진다. 그저 우리가 처한 상황의 절대적인 열위만 느껴질 뿐이다. 그래도 이 정도이기에 다행이지라든가, 저 사람보단 우리 아빠가 나으니까 라는 이야기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현실이라는 커다란 공이 마치 가시 돋친 복어처럼 갑자기 가시를 뾰족하게 세우고 나에게 달려올 뿐이다.
앞으로 우린 더 불쌍해지려나. 그러고서 또 회복하고 웃는 날들도 있겠지. 그리고 불쌍한 날들이 또 이어지겠지.
꼭 껴안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현실. 그 현실 속에서 또 무너지고 다른 선택지가 없어 힘겹게 또 일어서고, 어김없이 다시 무너지는 우린, 불쌍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