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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호 Mar 21. 2020

켄다 해변의 달빛

2020. 2. 7.

켄다해변의 달빛


오랜만에 푹잤다. 호텔에서 모기장 치고 에어컨 틀어놓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그래 여기도 아프리카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 후 카메라를 들고 스톤타운을 한 바퀴 돌았다. 어제는 야시장에서 현지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건강하게 여행을 마무리하려면 조심해야 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즐기는 내 성격도 나이 탓인지 약해졌다. 거리 한 모퉁이에서 마사이족을 만났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돈을 달라고 한다. 4000실링을 요구하는데 1000실링을 주기로 했다. 사진을 찍은 후 마사이족 친구가 걸고 있는 동물 뼈로 만든 목걸이가 좋아 보여 5000실링에 달라고 하니 약간 망설이다가 좋다고 한다. 목걸이를 목에 걸고 그 친구와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한다. 그들은 외국인이 사진을 찍는 이유가 자신들을 동물 취급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라위의 칸데 해변에서 만난 부유층 말라위인이 외국인들이 아프리카인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몽키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아프리카인들의 잠재의식 중에 있는 그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으면 자기들을 동물 취급하는 것으로 보고 싫어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왕에 찍을 거면 돈을 내라고 한다. 그러나 사진을 찍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 친해지면 기꺼이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사진을 찍고 싶으면 카메라를 들이대기보다는 말을 걸어 그들과 친해지는 것이 좋다. 


스톤타운 해변에는 관광객을 위한 작은 배들이 많다. 아침 해변에는 밤새 보관하던 보트용 엔진을 메고 배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엔진을 떼어서 보관했다가 아침에 다시 배에 설치하여 관광객을 태우는 일을 시작한다. "Thanks for coming', 'Never give up', 'Ladies Free', 'Remember' 배의 그늘막에 써놓은 배 이름들이 재미있다. 호텔로 돌아와서 10시에 섬 북쪽 밍위 해변으로 출발했다. 밍위 해변지역은 경치가 좋은 휴양지라고 한다. 한 시간 반 걸려 북쪽 해변의 선셋비치 호텔에 도착했다. 해변은 깨끗하고 바다는 옥색과 짙은 청색으로 아름답다. 객실도 쾌적하다. 해변 비치의자에 킬리만자로 맥주를 마시며 누워 있으니 긴 여행의 시름이 사라진다. 아프리카인데 해변에는 백인들만 있다. 여기가 아프리카가 아니고 유럽 어디인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오후 3시부터 스노클링을 하기로 되어 있다. 스노클링 장비를 가지고 작은 보트를 타고 해변에서 100m쯤 나가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것인데 스노클링 장비가 물이 새고 지저분하여 스노클링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물에만 두 번 들어갔다 나왔다. 한 시간 정도 바다에서 머물다가 해변으로 나와서 마사이족들이 간단한 기념품을 만들어 파는 곳으로 갔다. 얼굴에 모래 투성이인 마사이족 아이들의 표정이 재미있어 사진을 찍었다. 돌도 안 지난 아이부터 서너 살 아이까지 열두어 명이 되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데 1000실링짜리 지폐가 4장밖에 없어 네 명에게만 주고 나머지는 엄마인 듯한 여인에게 5000실링을 주며 나누어 주라고 했다.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주어야 한다. 돌도 안된 아기가 얼굴에 모래를 잔뜩 묻히고 있어 모래를 먹을까 봐 걱정스럽다. 아이 키우는데 극성스러운 우리나라 엄마들이 보면 난리 날 일이다. 잔지바르섬에는 마사이족들이 많이 와 있다. 고향인 내륙에서 서 관광객들이 많은 이곳으로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벌기 위해 왔다. 자신들이 신는 모양의 가죽 슬리퍼를 팔기도 하고 직접 만든 목걸이나 팔찌를 판다. 이들은 다른 부족들과는 달리 옷차림을 현대식이 아닌 전통복장을 고집하여 원색의 널찍한 마사이 블랑켓을 몸에 두르고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다니기 때문에 쉽게 구별이 된다. 해변에서 마사이족 특유의 춤을 추며 돈을 벌기도 한다. 


해가 저물 때쯤 석양의 바다를 보려고 선셋 크루즈 보트를 탔다. 배는 돛을 달고 있다. 엔진을 가동하여 바다로 나가서는 돛을 펴고 바람을 받아 앞으로 나아가는데 돛의 위치를 바꾸어 같은 바람이라도 앞뒤로 왔다 갔다 할 수가 있다. 배는 해가지는 해변을 왕복으롤 오르내리며 승객을 태우기도 하고 내려 주기도 한다. 수평선 끝에 아프리카 대륙이 희미하게 보이는 위로 해가 지면서 하늘이 붉은빛으로 바뀐다. 누가 검은 대륙이라고 했나. 광활한 초원과 자연이 숨 쉬고 인류의 조상을 기른 대륙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이 장엄하다. 해가 완전히 건너편 아프리카 대륙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배에서 머물다가 호텔 앞 해변에서 내렸다. 마침 케이프 타운에서 빅폴까지 함께 여행하다 헤어진 기슬이 밍위 해변에 와 있어서 저녁을 함께 먹기로 약속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기슬과 함께 식사를 하고 그동안 여행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처럼 한국말을 마음껏 했다. 밤이 되니 해변은 조용하다. 보름달빛 아래 물이 저만치 빠진 해변으로 조용히 사람들이 걷고 있다. 해변을 따라 숙소로 돌아가는 기슬을 배웅해주고 돌아오는 해변길이 보름달 아래 평화스럽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잡아와 이 섬에 가두어 두고 채찍으로 때리면 지르는 비명소리의 크기로 노예의 값을 정하던 그때에도 달빛은 이 해변을 지금처럼 평화스럽게 비추었으리라. 좁고 더러운 방에 쇠사슬로 묶여 신음하던 노예들이 바라보던 달빛이 켄다 해변을 비추고 있다. 


마사이족 청년의 장신구, 동물뼈로 만든 목걸이를 내가 샀다.




그늘막에 써 놓은 배이름이 재미있다



하루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이 아프리카 대륙너머로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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