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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호 Mar 22. 2020

해변에서 게으름을 피우다

2020. 2. 8.

해변에서 게으름을 피우다. 


며칠 전부터 조금씩 아프던 어깨 통증이 심해져 옆 호텔에 있는 마사지 샵에서 등과 어깨 부분 마사지를 받았다. 조그만 여자 손길이 맵다. 신음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견갑골 부위를 누른다. 30분 마사지를 받고 나니 통증이 좀 덜 해진다. 오늘은 아무 일정이 없다. 일찍 해변 비치의자를 하나 맡아놓고 해변을 어슬렁거릴 생각이지만 뜨거운 햇빛을 보니 그럴 생각도 사라진다. 그래도 비치의자에 누워있다가 더우면 바다에 들어가면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바다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옥색과 짙은 청색으로 아름답다. 비치의자에 누워 있으니 잠이 온다. 잠을 자면서도 낮잠을 자면 밤에 잠을 못 잘까 봐 걱정이 되는 걸 보면 복잡한 사회에서 살면서 항상 앞날을 걱정하던 버릇을 아프리카에 온 지 40일이 다 된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폴리폴리는 동부 아프리카의 언어인 스와힐리어로 천천히라는 말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 때면 폴리폴리라고 한다. 빨리빨리와 비슷한 발음인데 의미는 정반대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가 보면 속이 터지게 느리지만 폴리폴리가 이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러면서 늦어서 안절부절못하는 우리에게 하쿠나 마타타라고 한다. 하쿠나 마타타는 ‘no problem’이다. 이들에게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니 걱정 말라는 소리다. 이들에게 폴리폴리와 하쿠나 마타타가 행복한 삶의 근원이라면 우리는 행복하지 않게 살아왔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오늘날처럼 물질적인 풍요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방식이 옳은 삶 인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점심때가 되었는데 배가 고프지 않다. 식당에서 샐러드로 점심을 간단히 먹었다. 식당에서 만난 맥켄지에게 어깨가 아프다고 하니 내일 스톤타운에 가서 근육이완제를 먹으면 좋아질 거라고 한다. 심심해서 해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어제 사진을 찍었던 마사이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전날 만났던 마사이 여자들과 아이들이 한번 만나 아는 사이라고 반가이 맞아준다. 얼굴에 온통 모래 투성이인 꼬마도 나를 보고 웃는다. 어제 봤다고 낯을 안 가리는 것 같다. 꼬마를 안고 나와 해변 매점에서 콜라를 한병 사줬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이 어릴 때는 귀엽고 이쁘다. 커가면서 본래의 모습과 성격이 드러난다. 용맹스러운 마사이족이지만 어릴 때 모습은 여느 아이들이나 같다. 마사이 아이들이 더 수줍음이 많고 낯을 많이 가린다. 콜라를 마시는 아이를 데려다주고 비치의자에 누워 있으니 또 잠이 온다. 해변은 게으른 사람에게 좋은 곳이다  곳곳에 선탠을 하면서 잠을 자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다. 여자들도 비키니 차림으로 스스럼없이 활보하거나 누워 있는 곳이 해변이다. 


사람들은 매우 이율배반적이다. 평소에는 속옷이 보일까 봐 주의를 하던 여자들이 해변에서는 너무 대담하게 속살을 노출시킨다. 평소에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던 남자들도 해변에서는 과감한 여자들의 노출에 무감각 해진다. 사람이란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니까 그럴 거라고 생각해 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깨의 통증 가라앉지 않고 팔 쪽으로 통증이 옮겨왔다. 가만히 있으면 통증이 더 심해져서 비치의자에도 한참을 있지 못하고 오후 내 비치의자와 호텔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해거름 무렵 어제 기슬과 이곳에 온 한국인들과 저녁을 함께하기로 약속을 해서 기슬이 알려준 식당을 찾으러 해변으로 나섰다. 북쪽 능위해변 어딘가 있는데 걸어서 한 30분 정도 걸릴 거리다. 해변을 따라 걸어가는데 바위 밑을 통과하는 해변길이 만조로 물이 가득 들어와 있다. 처음에는 몇 군데는 물이 얕아서 물로 들어가 건넜지만 다음 한 군데는 너무 깊어서 건널 엄두가 안 난다. 해변 가에서 그림을 그려 파는 현지인도 그림을 높은 곳에 올려놓고 대피 중이다. 언제쯤 지나갈 수 있을까 물어봤더니 45분 정도 지나면 물이 빠질 거라고 한다. 시간을 보니 약속시간에 많이 늦을 것 같아 그냥 돌아섰다. 돌아오는 길에 해변에 있는 마사이족 젊은 친구 엘리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그의 사진을 찍었다. 사실  내가 사진을 찍고 싶어 그에게 말을 걸었었다. 엘리아는 아루샤가 고향인데 그는 해변가 호텔에 고용되었다. 마사이 전통복장으로 경비를 서면서 투숙객들에게 볼거리도 제공하고 있다. 그의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속 인상이 마음에 든다. 엘리아도 자기 사진을 보더니 마음에 든다면서 왓츠앱으로 보내 달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앞 아랫니 두 개가 없는 이유를 물었더니 마사이 남자는 어릴 때 앞니 두 개를 뽑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영어로 나누는 대화에 그의 영어가 서툴러 더 물어볼 수가 없다. 


내가 묵는 호텔 식당에 돌아오니 약속시간이 많이 지났다. 기술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못 간다고 문자를 보내고 혼자서 피시 카레와 사파리 맥주로 저녁을 먹었다. 주말이라 해변이 시끄럽다. 밤늦게까지 사람들이 해변에 머물며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며 떠든다. 밴드도 시끄러운 음악으로 이들의 흥을 돋운다. 오늘이 보름이라고 풀문 축제가 있어서 해변이 소란스럽다고 한다. 시끄러운 가운데 침대에 누웠다가 옷을 입은 채로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다가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가 넘었다. 옷을 벗고 다시 침대로 들어가 다시 잠을 청했다. 


해변에서 기념품을 팔기위해 묘기를 보이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이 해변에 기념품을 진열해 놓고 손님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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