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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호 May 23. 2021

중산간 농작물의 경제학

13구간 (4.7)

오늘 걷기를 시작하는 용수포구에는 절부암이 있다. 절부 고씨가 조난당한 남편을 기다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절부암은 콘크리트에 덮여 안내판으로만 이곳이 절부암이라는 걸 알 수 있을 뿐이다.


길은 용수포구에서 바로 중산간으로 이어진다. 마을을 벗어나면 어제와 마찬가지로 길 좌우로 마늘밭이 나타난다. 간혹 비트나 양파, 양배추 또는 보리밭이 있긴 하지만 마늘이 대세다. 무우와 마찬가지로 양배추도 가격이 내려 수확을 포기한 곳이 많다.


농사는 작물을 기르기보다는 시세를 가늠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애써 길렀지만 시세가 없으면 수확 비용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작물 수확을 포기하고 갈아엎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올해는 양배추와 무우가 그런 것 같다. 잘 기른 양배추가 버려진 채 밭에 뒹굴고 있는 것을 보니 농부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특전사 대원들이 길을 낸 특전사 길은 사유지로 통행이 제한되어 우회해야 한다. 이곳은 제주도 서쪽의 평야지역으로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이 얕은 구릉 사이로 이어지며 멀리 평야지역에 솟아있는 저지오름이 보인다. 저지오름이 오늘 걷기의 마지막 지점이다.


밭 사이를 호젓이 걷다 보면 길은 낙천리에 닿는다. 낙천리는 아홉굿 마을로 의자공원이 있는 곳이다. 아홉굿이란 우물이 아홉 개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은 아홉 개의 좋은 것 (nine good)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곳에는 다양한 의자를 설치해놓은 공원이 있다. 마을 가운데 연못에 돌로 설치해 놓은 의자가 인상적이다. 공원 입구에는 거대한 의자형 구조물도 있다.


의자공원을 지나면 돌담 사이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오솔길이다. 오솔길을 지나 뒷동산 아리랑길에 들어서면 저지오름이 지척에 다가선다. 해발 240미터인 저지오름은 주변에는 해발 100미터 전후의 마오름, 이계오름, 송이오름을 거느리고 있다.


저지오름으로 오르는 길로 들어서니 숲이 울창하다. 오름 아래쪽에 둘레길이 있고 가파르게 계단을 따라 분화구 쪽으로 올라가면 분화구 주위에도 둘레길이 있다. 분화구 제일 높은 곳에는 산불 감시초소를 겸한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한라산과 산방산이 보이고 주변의 넓은 평야와 오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 분화구 둘레길은 길이가 800미터이고  분화구의 깊이는 60미터에 달한다. 분화구 주위를 한 바퀴 돌아 아래쪽 둘레길로 내려서서 둘레길을 따라 오름 주위를 반 정도 돌면 저지리 마을로 내려가는 계단길이 나온다. 마을로 내려서서 도로를 따라 가면 저지 정보화 마을이다. 이곳에서 오늘 걷기를 마무리했다. 인근 식당에서 소고기 국밥으로 점심을 먹고 용수 포구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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